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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here! Even if Macron doesn't want it, we are here!” - "On est là! Même si Macron ne le veut pas, nous on est là!" ...

2019-08-28

Part 2/4. 2017년 여름 함부르크 G20 반대투쟁 구속자 알레산드로의 편지(Lettres de prisonniers Alessandro du G20 Hambourg ete 2017)


2017년 7월 22일 알레산드로(Alessandro)의 편지

동지들께,

 오늘 저는 수감 날짜를 세는 마지막 작대기를 채웠습니다. [주석 1] 함부르크에서 독일 경찰 특공대가 제 어깨를 잔인하게 낚아채 땅바닥에 패대기 쳐버린 지, 20일이 흘렀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경찰 특공대는 저를 체포한 직후, 거리에 있던 수많은 연대 동지들에게 돌진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발코니에서 체포 장면을 목격한 이들과의 의사소통을 차단했습니다. 제 소지품을 검사하면서, K-way 배낭을 비롯한 모든 소지품을 바닥에 집어던졌습니다. 끔찍했습니다. 심적으로 많이 시달렸습니다. 키가 2미터나 되는 경찰이 제가 갖고 있지도 않았던 물병과 헬멧 같은 증거품을 들고 와서, 유도신문을 했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자백을 유도하며, 심적 압박을 가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봉고차에 태워져, 왈츠처럼 이곳저곳으로 압송 당했습니다. 첫 번째 신체 수색은 경찰서에서, 두 번째는 ‘GeSa’에서 이뤄졌습니다. ‘GeSa’는 G20 반대투쟁에 대응하기 위해, 5백만 유로를 들여 특별히 건설한 정치범 특수 감옥입니다. 그곳은 내부에 컨테이너가 있는 오래된 창고였습니다. 수많은 조립식 독방이 있었고, 인공조명으로 오로지 내부에서만 불을 밝힐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내부로 들어가자마자, 처음에 저는 완전히 발가벗어야했습니다. 심지어,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바지 지퍼까지 검사 당했고, 시계와 스웨터도 벗어야했습니다. 그런 다음 음주 검사가 진행됐고, 마지막에는 사진을 찍었습니다. 교도관이 제 양팔을 붙잡아 등 뒤로 젖힌 다음, 방으로 데려갔습니다. 팔을 등 뒤로 젖히는 건, 이후에도 제가 이동할 때 쓰인 호송 절차입니다. 입감되기 전, 항상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신발과 안경을 벗어야했습니다. 독방은 어두웠고, 방음처리가 되어있었습니다. 매우 작은 나무 의자와 필요한 손잡이 등의 집기가 있었습니다.

 오전 4시간 동안에는 변호사에게 연락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연락을 하고 나서도 몇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변호사를 접견할 수 있었습니다. 감옥에서는 다양한 정신적 학대와 압박이 가해졌습니다. 우리 동지들 중 일부는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했음에도, 법정에 소환되어 공판을 받았습니다. 자기변호를 했지만, 판사에게조차 아무런 쓸모가 없었습니다. 판사의 유일한 관심사는 우리가 범죄를 자백했는지 여부였습니다.

 정치범 특수 감옥 ‘GeSa’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뒤, 우리는 일반 구치소로 호송되었습니다. 첫 번째 도착지는 빌베르더(Billwerder) 구치소였습니다. 저는 다시 굴비처럼 엮여 다른 구치소로 호송되기 전에 2~3시간가량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우리 중 열댓 명은 소년원(소년 구치소)으로 호송되었습니다. 저는 독방에 수감되었고, “재사회화”라는 명목으로 하루에 1시간씩 밖을 걸어 다닐 수 있습니다. [주석 2] 나머지 23시간은 제게 더 많은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독방에 가둡니다. 그러나 제가 소위 “주동자”라 불릴만한 자격이 있는지 먼저 따져봐야 했습니다. 계속된 요구 끝에, 저들은 마침내 4일이 지나서야 우리에게 변호사 연락을 허락했습니다.


 독일 동지들은 석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빌베르더 구치소로 이감된 지 6일이 지났을 즈음, 이곳에서 Orazio 동지(1~2일 전 쯤, Orazio 동지의 체포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를 비롯하여 다른 이탈리아 동지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사동 한쪽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에 다른 곳으로 이감되었습니다. 현재, 이곳에 이감된 지 10일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차례대로, 석방 요청을 위한 구속적부심에 참여했습니다. 코미디 연극 쇼와 다름없었습니다. 정치범을 짓밟으며 경력을 쌓으려는 야망에 찬 젊은 판사가 재판을 담당했습니다. 결국 판사는 구속적부심을 기각했고, 우리와 세계 각국 구속자의 구속 지속을 확인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우리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며, 검찰과 이미 완벽하게 사전 합의된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특히 제 사건의 경우에는, 귀찮게 굳이 기각 사유를 읽어볼 것도 없었습니다. 앞선 이전 사건과 동일한 사유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평상”시 우리가 가장 빈번하게 뒤집어쓰는 범죄 혐의, 즉 물병 투척에 대한 처벌은 주로 벌금과 같은 ‘재산형’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해지는 최근 처벌은 도발적으로 조직된 함부르크 정상회담 반대투쟁에 대한 공안탄압의 맥락입니다. 주민투표에 의해 함부르크 올림픽 개최가 무산되었기 때문입니다. 독일 당국은 언제나 저항적이고, 통제불능의 투쟁이 벌어지는 셍 파울리(Saint Pauli), 알토나(Altona), 스턴챈즈(Sternschanze) 일대에서, 강력 처벌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정상회담을 며칠 앞두고 함부르크 경찰청장 두데(Dudde)와 그의 꼬붕은 재앙적인 “안보” 대책과 함께, 그간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에 대해서도 발표했습니다. 신고된 천막 수십 동을 치고, 농성촌에서 밤을 지새운 활동가들도 침탈, 곤봉 폭행을 당했습니다. 여하튼 이 부당한 침탈은 원하는 효과를 얻지 못했으며, 어느 누구도 쫄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7월 6일 투쟁의 날에 함께 했습니다. 지난 몇 달 간의 독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함부르크에서 “역사상 가장 거대한 블랙 블록” 봉기가 터져 나왔습니다. 많은 이들이 투쟁 현장에 있었습니다. 경찰청장 두데의 꼬붕이 확성기로 해산명령을 하며, 우리에게 신경질적으로 고성을 질렀습니다. 이윽고,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은 시위에 대해, 곤봉, 물대포, 최루탄 난사로, 침탈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마 저들은 짭새 15,000명을 배치함으로써, 함부르크 거리 질서유지에 성공할 수 있으리라 진지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모두 봤듯이, 현실은 어떠했습니까? 독일 경찰이 보여준 끔찍한 폭력은 언제든지 폭발할 준비가 되어있으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파편 수류탄과도 같았습니다.

 수많은 곳에서 봉기의 온상이 두드러졌습니다. 도처에서 분노가 점화되었습니다. 시위 금지 구역을 향한 지속적인 진입투쟁으로 보안구역이 축소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투쟁으로 인해, 권력자를 환영했어야할 호텔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저들은 지옥과도 같은 함부르크 다른 지역에서 철통 보안을 유지하며, 헬기와 광역 도시권 교통망으로 권력자를 이동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찰이 진압 시도를 할 때마다, 우리는 집단적 분노로 저들에 맞서 투쟁했습니다.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강력한 투쟁에 격파당한 직후, 경찰은 가장 혹독한 탄압 수단을 총동원하여 대응했습니다. 대규모 체포, 독일 전역에서 상당한 규모의 검문소 운영, 부당한 구속 등이 이어졌습니다. 현재까지의 수치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35명의 동지가 수감되었고, 경찰청장 두데 꼬붕의 권한남용에 대한 소송 약 50건이 제기되었습니다.

 함부르크 G20 반대투쟁에 참여했던 경험은 오랫동안 우리의 뇌리에 각인될 것입니다. 구속자는 그리 많지 않아서, (고작 그 정도의 탄압으로) 우리의 이상을 꺾을 순 없습니다. 우리는 “발전”과 민주주의라는 견고한 성벽(허위 이데올로기) 뒤에 숨어있는 전 세계 권력자의 축제를 훼방 놓는 즐거운 투쟁을 벌였습니다. 저들은 우리의 형제자매, 이주민의 삶의 운명을 결정짓는 현 체제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우리 모두를 계속해서 살해하고, 투옥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의 투쟁이 정당했음을 확신합니다. 여러분의 지지에 힘입어, 우리는 끝까지 힘차게 투쟁할 것입니다. 최근에 많은 동료 재소자가 G20과 관련하여, 당시 투쟁 현장에 있었는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웃으면서 악수를 청하며, 대화를 나누곤 합니다. 이들은 자본 순환의 고도화로 인한 ‘필요에 따른 도둑’(생계형 범죄자)입니다. 그리고 감옥은 자본가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일 뿐입니다.

 감옥에 갇힌 전 세계 여러 동지들과 공조, 연대합시다. 같은 이상에 감동받아, 매일같이 목숨 걸고 헌신하는 동지들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합시다.

 하루 빨리 여러분과 만나게 되는 날을 꿈꾸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2017년 7월 22일, 함부르크 빌베르더 구치소에서, 알레산드로 올림.

 * 추신 : 유럽연합(EU) 지도자에게 묻고 싶습니다. 가맹 회원국에 대한, 유럽연합 법률의 우위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리고 처우가 동등하지 않을 경우, 유럽연합 시민에게 해당되는 이점은 무엇입니까? 동지들과 함께 구치소에 면회를 올 때, 신분증이나 운전면허증‘만을’ 제시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고 면회 오신 분들이 여권 제시를 요구받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이미 꽤 오래 전에 해답을 찾았습니다. [주석 3]

[주석 1] 그는 날짜를 세는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주석 2] 참고 : 이탈리아에서는 하루 일과 중, 잠시 수용 거실 문을 열어놓는다. 그래서 수감자는 자신이 있는 복도에서 걸어 다닐 수 있다.

[주석 3] 참고 : 이는 아마도 다음의 이탈리아 구호를 언급하는 맥락이다. : "La carta e solo carta, la carta brucerà." : “종이는 그저 쪼가리일 뿐, 쪼가리는 불에 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