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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here! Even if Macron doesn't want it, we are here!” - "On est là! Même si Macron ne le veut pas, nous on est là!" ...

2019-02-04

“내가 바리케이드이다!” : 들불처럼 번지는 노란 조끼 운동

노란 조끼 운동과 관련하여, 이번 진보평론 겨울호에 실린 제 기고글입니다. 많은 관심과 일독을 부탁합니다. 1월 5일에 작성한 것이기 때문에 현 시점의 상황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 여러 한계로 인해 폭넓은 시각과 풍부한 정치적 측면을 담아내지 못한 점, 르포 형식을 취하고 있기에 그에 따른 한계가 있다는 점은 아쉽게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직접 겪은 일들을 중심으로 생생하게 기술하였습니다. 사진(사진보기)은 출간된 진보평론에 실린 그대로이니 함께 참고해주세요. 원본 파일(PDF)이 필요하신 분은 이곳에서 다운로드하세요.


“내가 바리케이드이다!” : 들불처럼 번지는 노란 조끼 운동


- Fernand Kim
(사회주의, 코뮤니즘, 민주노조, 장기투쟁사업장에 특히 애착을 가지고 있는 활동가이다. 2018년 12월 5일부터 2019년 1월 1일까지 노란 조끼 운동의 물결이 휩쓸고 있는 역사의 한복판, 프랑스 파리에 체류했다. 필자는 파리에서 12월 8, 15, 22, 24, 29, 31일 총 6번의 집회에 참여했다. 아래의 글은 필자가 파리에 체류하며 경험한 노란 조끼 운동에 대해, 생생한 소감과 직접 촬영한 사진을 중심으로 서술한 글이다.)


1. 마크롱 퇴진 !


 파리가 노란 조끼 운동의 물결로 요동치고 있다. 노란 조끼 운동은 지난 2018년 11월 17일 파리 1차 대규모 집회로부터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글에 앞서 노란 조끼 운동의 주요 요구안을 간단하게 정리해보았다. 유류세 인상 철회, 최저임금·퇴직연금 대폭 인상, 모든 수당과 임금을 물가인상과 연동, 연료·전력 부문 국유화, 부유세 부활, 평등한 사회보장제도, 아웃소싱(외주화) 전면 금지, 최고 임금제 도입, 선출직 공직자의 월급은 전체 임노동자의 중간으로, 직접민주주의 확대, 민간 철도·우체국·학교 전면 국유화, 대기업 증세, 월세 제한, 난민 신청자 공정대우 등이다. "마크롱, 먼저 부유세를 만들어라! 우리는 세상의 종말과 월말 사이에서 선택하지 않는다."는 구호도 등장했다.

<2018.12.27. 파리 제 10대학(낭테르) 앞, 프랑스 공산당의 스티커. “약탈을 막아라. 부자에게 청구하라. 공공 서비스 기금! 은퇴자를 존중하라, 출혈을 멈춰라! 임금을 인상하라. 사람을 얕잡아보는, 공화국의 마크롱. 공화국을 경멸하는 마크롱.”>

 마크롱 정권의 일관된 ‘부자 감세’ 정책 기조로 심화되는 빈부격차 앞에서, 평범한 노동자민중의 삶은 세상의 '종말'이든, 각종 세금과 고지서가 밀려들고 털끝만큼의 월급이 들어오는 '월말'이든, 비참하고 어렵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도 없다는 의미이다.
 핵심적으로 유류세 인상철회와 부유세 부활을 의제로 촉발된 투쟁은 전선이 확장되어 마크롱 정권의 퇴진과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고 있다. 2019년 1월 4일 현재, 프랑스 전역과 유럽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어느 프랑스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노란 조끼의 물결은 시위 참가 연인원 100만 명을 넘어선 상황이다. 작년 11월 17일 이후 12월 17일까지 한 달 동안, 프랑스 전역에서 연행자만 4,570명이었고, 그 중 3,747명이 기소되어 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아직 수많은 사람들이 재판을 기다리고 있으며, 프랑스 전역의 연행자 중 216명은 구속되어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이는 사회 운동의 역사상 하나의 엄청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트럭 운전 노동자이고, 노란 조끼 운동의 대변인 역할을 맡아 주도적으로 운동을 이끌고 있는 Eric Drouet(에릭 드루에)는 2018년 12월 22일과 2019년 1월 2일 두 차례 폭력적으로 체포되는 일을 겪었다. 에릭이 받은 혐의는 ‘미신고 집회 주최’이다. 이는 마크롱 정권이 노란 조끼 운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다. 에릭은 2월 15일 형사 재판을 앞두고 있다. 프랑스 민중들은 평화 행진을 위해 인도를 걷고 있었고, 에릭을 보호하던 민중들은 경찰에 의해 폭력적으로 둘러싸여 폭행을 당했다. 이 중에는 그저 길을 걷고 있던 임산부와 노인들도 있었으며, 프랑스 경찰은 이를 고려하지 않고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노란 조끼 운동이 점차 확대되고 파리 민중들의 분노가 확산되자, 마크롱 정권은 초기의 강경 대응 기조에서 한발 물러나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은 기만적인 유화책을 제시하며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척 했다. 하지만 페퍼포그 장갑차와 최루탄, 곤봉, 쇠파이프, 각목, 소형 수류탄까지 동원하여 시위를 강경 진압하는 기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는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에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위 진압 용도로는 남한에서 이제 찾아볼 수 없는 최루탄과 페퍼포그 장갑차, 플래시 볼 등에 의해 수많은 프랑스 민중들이 희생당하고 있다. 경찰의 조준사격으로 부상을 입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2. 전진하는 바리케이드 : 바리케이드는 거리를 차단한다, 그러나 길을 연다!


<2018.12.29. 파리 15구 꽁벙시옹 거리에 설치된 바리케이드>

 위에 언급된 숫자와 사례뿐만 아니라, 내가 파리에서 한 달간 체류하며 직접 생생하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가슴으로 느낀 상황은 더욱 분노를 일으킨다. 지난 12월 8일, 점심 식사를 하고 있던 골목 안쪽과 식당 내부까지 최루탄 연기가 들어왔었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집회에 참여했다. 거리로 나가니 어느새 자연스레 행진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마침 12월 8일은 제 4차 대규모 집회가 예정되어 있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파리 시내 곳곳에선 가두 행진과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둔 경찰과의 대치가 이어졌다. 아침부터 시작된 투쟁은 해가 지고 밤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정신없이 걷고, 달리고, 도망치고, 부수고, 던지는 것을 반복했다. 때로는 최루탄 연기와 페퍼포그 플래시 볼에 구역질과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기도 했다. 그때마다 자발적으로 조직된 ‘Street medic’ 동지들이 나타나 안약과 스프레이로 치료해주었다. 과장을 좀 보태어 남한에서 노란 조끼 운동에 연대하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고 하니, 매우 반가워하며 이것, 저것 구호물품을 챙겨주던 동지들의 따뜻한 배려를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시위대도 경찰도 다들 재빨랐다. 너나 할 것 없이 최루탄 연기를 방어하기 위해 물안경과 전용 마스크까지 준비한 민중들은 도로와 거리를 기습적으로 점거하며 행진을 이어갔다. 정권의 폐쇄조치와 노동자들의 총파업으로 주요 관광명소와 박물관, 미술관 등은 대부분 폐쇄되었고 대중교통도 대부분 끊겼다. 민중들의 거대한 투쟁으로 도로와 거리, 광장은 해방구였다.
 수많은 스타벅스, 맥도날드, 명품 상점, 자동차 유리창과 집기가 분노한 민중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누군가 스타벅스 매장 유리창을 열심히 부수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사람들이 스타벅스를 왜 부수는 것이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스타벅스는 미제국주의자들과 이스라엘 군대를 지원한다. 이는 결국 팔레스타인 민중들을 학살하는 것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타벅스를 공격해야한다. 그리고 여기 있는 커피들은 제 3세계 민중들을 착취한 결과물이고, 스타벅스 자체가 자본주의의 상징이다.”고 대답했다. 나에게 질문했던 사람은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며 지지의 뜻을 보내주었다. 맥도날드는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Pax Americana’의 상징이기 때문에, 맥도날드에 대한 공격은 이 시스템에 대한 민중들의 정당한 분노의 의사표시로 이해했다. 경찰이 갑자기 기습하여 앞서 가던 청년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해가는 일이 2~3번 있었는데, 나는 여러 기지를 발휘하며 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프랑스 민중들이 이렇게 투쟁할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고민했다.

<2018.12.08. 왼편에는 “세금을 내라”는 구호가 적혀있다. 분노한 민중들에 의해 파괴된 스타벅스 매장.>

 상점의 집기와 쓰레기통, 각종 물건들에 불을 질러 형성된 바리케이드, 그리고 금속 재질로 된 교통 통제선을 모아 만들어진 바리케이드는 경찰과 장갑차가 밀려오는 거리를 차단했다. 하지만 민중들이 가야할 ‘방향’을 제시했고, 해방된 ‘길’을 열었다. 바리케이드는 계속해서 전진하고 있었다.


3. 파괴와 창조의 변증법 : ‘불’도 거리를 차단하지만, 길을 연다!


 해방된 광장과 거리에는 분노한 민중들에 의한 불길이 치솟았다. 분노한 민중들은 바스티유 광장, 콩코드 광장, 샹제리제 거리, 그리고 파리 시 내외 주요 도로와 거리 곳곳을 점거했다. 내가 파리에 체류하기 전에는 단두대가 상징적으로 등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나는 노란 조끼 동지들과 함께 프랑스 대혁명의 상징인 바스티유 광장을 점거했다. 바스티유 광장 안내판에는 “독재정권에 반대한다. 마크롱 퇴진!” 등의 구호가 적혀 있었다. 자발적으로 도로 차단과 교통 통제에 나선 시위대들은 차량 운전자의 노란 조끼 소지 여부를 확인하며, 천천히 통행량을 조절했다. 파리 교외 지역에서는 시위대가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아마존, 루이비통, 대형 마트 등으로 향하는 화물 트럭 등을 비롯하여 도로를 전면 차단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래로부터 형성된 민중의 힘을 나타내기 위해 물류와 교통의 흐름을 차단하는 것. 이를 통해 파리 민중들은 사회를 구성하는 원동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 계급적인 힘의 원천을 차근차근 자각하고 있었다.
 나는 어디선가 시위대를 헤집고 나타난 소방차를 가로막고, 불을 끄지 말고 파업하라고 촉구했다. 불을 끄려는 소방차에 길을 터주는 온건파와 짧은 논쟁을 했다. 불을 더 많이 질러야 마크롱이 우리의 얘기를 듣는다고 강변했다. 국적이 중요하지 않기에 내가 남한 사람인 것과 시위에 참여하는 것은 관계가 없다고 했다. 나는 국제주의자라고 말했다. 시위대에 의해 점거된 도로와 불로 형성된 바리케이드 앞에서 토론했던 우리들은 몸으로 ‘파괴와 창조의 변증법’을 체화하고 있었다. 분노한 민중들이 지른 불은 거리를 차단했지만, 바리케이드가 길을 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길’을 열었다.

<2018.12.08. 분노한 민중들은 행진하면서 거리에 불을 피웠다. 이는 경찰의 진압을 더디게 하는 바리케이드 역할을 했다.>

 자신을 레닌 마오이스트라고 소개한 어떤 청년과 함께 맥도날드를 공격하기 위해 걸어가는데 마침 안에 사람들이 있었다. 시위대는 사람들이 있는 상점은 공격하지 않았다. 길을 가는 시민을 공격한다거나, 내가 보기에 현저하게 부당한 행위를 하는 것도 전혀 목격할 수 없었다. 내 앞에서 곤봉에 터져가며 끌려간 청년들이 눈에 밟힌다. 돈이 없어 신발과 옷과 샴페인을 얻지 못해 집단적으로 문 닫은 상점을 공격하기도 하는 차별받는 민중들보다, 청년들을 곤봉과 군홧발로 짓밟으며 끌고 간 경찰들이 사회과학적으로 훨씬 더 부당하다. 가두 행진을 이어가며 길거리에 도배되어 있던 극우 민족주의(프랑스에서 민족주의는 극우파이다.) 정당 지도자의 포스터에 불을 지르거나 일일이 떼어내면서 프랑스 청년들과 교감했다. 이 사람은 파시스트나 나치스트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었다.
 한편 가두 행진 중에 경찰과의 대치가 이어지면서 거리에서 고착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경찰이 발포한 최루탄과 플래시 볼이 날아들었고, 목장갑을 끼고 그것들을 다시 경찰들에게 되돌려 던져주는 일도 있었다. 이와 같은 양상은 여러 차례 반복되었는데, 경찰과 군인들은 총과 수류탄, 최루탄으로 중무장을 하고 길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불법적으로 검문을 했다. 소지품을 검사했고,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연행하는 일도 목격했다. 길거리 고착과 시위대의 정면 돌파 혹은 우회는 가두 행진 중에 흔하게 목격하는 상황이었다.
 24일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도 에투알 개선문 앞 드골 광장과 샹제리제 거리를 중심으로 소규모 투쟁과 행진이 이어졌다. 당일 경찰이 개선문을 본격적으로 포위하기 이전에, 노란 조끼 동지들은 드골 광장을 잠시 점거하고 개선문 앞까지 진출했었다. 하지만 나와 노란 조끼 동지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개선문 바로 앞에서 경찰에 의해 포위되었고, 평화적으로 가만히 서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일부 노란 조끼 동지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해가는 상황이 발생했다. 우리들은 샹제리제 거리 방향 인도로 밀려났다. 숫자가 부족해 대규모 행진이나 경찰과의 대치를 이어갈 수 없던 노란 조끼 동지들은 재치 있는 투쟁을 펼쳐나갔다. 크리스마스 새벽이 될 때까지 거의 밤을 세워가면서, 개선문을 중심으로 광장 주변을 빙빙 돌았다. 때로는 경찰에 항의하고 구호를 외치면서 광장과 샹제리제 거리를 계속 돌아다녔다. 거리에서 음악을 틀고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 마크롱 퇴진을 외치면서, 춤판을 벌이기도 했다.


4. "A.C.A.B." Journaliste ! Collabo !


 "A.C.A.B." 때로는 가두 행진으로, 때로는 경찰의 폭력을 피해, 때로는 거리를 평범하게 걸으면서 가장 간명하고도 인상 깊게 남았던 구호이다. “Macron Demission(마크롱 퇴진)”과 함께 거리 곳곳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구호였다. "A.C.A.B."는 속어이자 약어이다. 풀어서 쓰면, "All Cops Are Bastards. All Capitalist Are Bastards. All Colors Are Beautiful.(모든 경찰들은 나쁜 녀석들이다. 모든 자본가들은 나쁜 녀석들이다. 모든 색깔은 아름답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반(反) 경찰, 반 자본주의, 반 차별주의, 반 성차별주의, 반 인종주의 등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한편 29일 대규모 집회에서는 암구호가 적힌 이른바 ‘지침’이 SNS를 통해 전달되었다. 립스틱과 코르크를 가지고 BFM TV 방송사 앞으로 집결하라는 내용이었다. 일단은 방송사 앞에 집결했다. 노란 조끼 동지들에게 질문하여 그 뜻을 알고 나니 대단히 비장하고도 멋진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동안의 시위에서 경찰의 폭력이 워낙 무자비하여 부상자가 속출했고, 립스틱과 코르크는 그에 대비하기 위한 용도였다. 방송사 앞에 집결한 노란 조끼 동지들은 립스틱이나 코르크로 이마 혹은 뺨에 자신의 혈액형을 적기 시작했다. 한 동지가 나에게 혈액형을 물었고, 내 이마에 혈액형을 적어주었다. 립스틱과 코르크라는 암구호는 경찰의 폭력에 의해 우리가 피를 흘려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모두가 합심하여 재빠르게 수혈자를 찾기 위한 아이디어였던 것이다. 방송사 앞으로 집결하라는 것은 마크롱의 정권의 충견 노릇을 하는 프랑스 보수 공영방송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노란 조끼 동지들은 방송사 앞 다리와 도로 전체를 점거하고 방송사 건물을 포위하고 시위를 이어갔다. BFM TV는 계속되는 노란 조끼 운동에 대해 왜곡, 편파보도를 일삼으면서 시위대의 정당하고도 사소한 폭력 장면만을 반복해서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행태를 일삼았기 때문이다.

<2018.12.29. 파리 15구 남서쪽 프랑스 보수 공영방송 BFM TV 건물 앞, 항의 집회를 이어가는 노란 조끼 동지들. 왼편에는 “은행이 지배한다.”라는 현수막 구호가 적혀있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경찰은 노란 조끼 동지들을 고착하고, 최루탄을 발포하고 폭력적으로 오가는 사람을 막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경찰이 고착하고 있던 한쪽 벽에 시위대의 항의에 의해 뚫리기 시작했고, 방송사 앞 항의행동에 이어 우리는 다시 세느강변과 많은 골목을 누비며 에펠탑으로 개선문으로 가두 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날 밤 페이스북에 올라온 소식에 의하면, 어느 신문사 앞, 거리와 차량은 왜곡보도에 분노한 민중들에 의해 불에 탔다고 한다. 방송사 앞에서 노란 조끼 동지들은 수없이 외쳤다. “Journaliste ! Collabo ! (언론인이여! 함께 하라!)” 그리고 진정한 저널리즘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저널리스트! 콜라보!” 구호에 박자를 맞추어 나는 위트 있게 “Police ! Collabo !”를 외쳤고 노란 조끼 동지들의 웃음과 함성을 받으며, 우리는 함께 교감했다. 정권이 장악한 신문과 방송사, 그 앞에서 항의행동을 이어가는 노란 조끼 동지들의 모습들, 동지들과 함께 어울리며 ‘한다면 한다.’는 노란 조끼 동지들의 저력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5. 불가능을 요구하라 “자본주의 철폐! 혁명 만세!”


 파리 낭테르 대학 민주화 요구로 촉발된 ‘68혁명’ 이후, 만 50년이 흘렀다. 세기가 바뀌었고, 68혁명 이후 프랑스에서 가장 격렬한 반정부 투쟁이 펼쳐지고 있다. “우리는 68년 이후, 50년간 참아왔다. 마크롱은 루이 16세와 다를 바 없다. 드골보다 더한 독재정권이다. 마크롱은 ‘공화국’을 능멸하고 있다.” 등의 외침이 번지고 있다. 자본주의의 상징, 명품 매장과 은행에는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말처럼 방어용 합판으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그 합판 위와 거리 곳곳에는 다양한 급진적 구호와 민중들의 외침이 아로새겨졌다.
 체제를 정면으로 겨누는 반자본주의적 구호들도 흔하게 만날 수 있었다. “자본주의 철폐! 부르주아지 시스템 파괴! 혁명 만세!”, “은행이 우리의 삶을 훔쳐간다. 반자본주의! 부르주아지에게 죽음을.”, 시위대가 다녀간 은행 ATM에는 “당신의 삶을 넣으세요.”라는 철학적인 낙서도 적혀있었다.

<2018.12.22. 합판으로 도배된 은행과 그 위에 적힌 “파괴하라! 은행. 자본주의 엿 먹어라.”는 구호. 왼편에는 파괴된 ATM 기기>

 광장 곳곳 분수대 인근에서는 “자본주의가 우리의 삶을 훔쳐간다, 자본주의 없애자, 자본가들은 일 안하고 돈 번다. 은행을 파괴하자. 당신이 진정으로 당신만의 삶을 살고 싶다면, 사회가 정한 규칙을 부수자. 자본주의 엿 먹어라. 우리 자신이 바리케이드이다.” 등의 낙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페라 가르니에 근처 분수대를 거점으로 광장을 점거하고 분수대 주변을 빙 둘러서 대오를 형성했던 그 아름다운 모습을 내 가슴 속에 담았다. “거리와 광장의 주인은 누구인가?” 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에 구태여 대답할 필요도 없었다. 민중들은 이미 투쟁으로 몸소 느끼고 있었다. 분수대에 앉아 노란 조끼 동지들과 담배를 피우며 “사람들은 삶의 다양한 색깔을 이해하기 위해, ‘어둠’을 알고 있어야한다.”는 심오한 문장이 적힌 엽서를 잠시 떠올렸다.

<2018.12.29. 프랑스 보수 공영방송 BFM TV 앞, 항의 집회 현장. 강대국들과 경찰, 군대 그리고 방송, 미디어, 통신, 은행, 금융, 보험 자본의 거대한 카르텔. 이에 대항하는 노란 조끼를 입은 민중들. 사회를 지탱(방위)하는 힘은 ‘누구에게서’ 나오는지에 대해, 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풍자와 은유를 담고 있는 현수막이다.>

 잠시 방문했었던 파리 제 10대학(낭테르) 입구에는 큼지막하게 학교 폐쇄를 알리는 투쟁 구호가 적혀있었다. “국가가 당신의 삶을 훔쳐간다.”는 구호도 적혀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노란 조끼 운동에 합세한 학내 노동자들과 대학생들이 수업거부, 총파업 선언을 하고 학교를 점거하면서 학교 전체가 멈춰있는 상태라고 했다. 파리 시내 수백여 개의 중고등학교, 대학교도 학생들의 수업거부 투쟁으로 멈췄다. 얼마 전엔 어느 고등학교 학생들이 투쟁을 벌이다가, 경찰에 대규모로 체포되어 무릎을 꿇은 채 기합을 받은 일이 있었다. 이는 민중들의 분노를 더욱 촉발했고, 10·20대 학생들의 교육공공성 투쟁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이 사건은 이후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하거나, 경찰에 의한 고착 상황에서, 광장에 모인 시위대가 학생들이 기합 받던 장면을 흉내 내며 경찰을 조롱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체제의 탄압이 민중들에 의해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체제가 조롱의 대상이 된 것은 곧 체제의 몰락을 상징한다.

<2018.12.14. 1871년 파리 코뮌이 시작되었던 몽마르트 언덕 위 사크레쾨르 대성당 앞에 적힌 구호. “파리 코뮌 1871, 노란 조끼들 2018”이라는 의미이다. 1781은 1871과 혼동한 오타로 추정된다.>

 프랑스 민중들은 다시 한 번 ‘혁명’을 외치고 있다. 1871년 파리코뮌과 1968년 혁명을 호명하고 있다. 22일 대규모 집회는 파리코뮌 투쟁이 시작되었던 몽마르트 언덕을 출발한 행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몽마르트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사크레쾨르 대성당 한쪽 벽에는 “파리코뮌 1871 노란 조끼 2018”이라는 구호가 적혀있었다. 요새 지형을 갖춘 몽마르트 언덕에 있던 대포를 탈취하여 전투를 선언함으로써 시작되었던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 그 시작점에서 파리 코뮌을 다시 호명하며 혁명을 외치는 노란 조끼 동지를 만난 것이다. 굵직하게만 보아도 1789년 대혁명, 1830년 7월 혁명, 1848년 2월 혁명, 1871년 봄 파리코뮌, 1848년 유럽혁명, 1968년 대투쟁 등 지배계급과 체제가 더 이상 이대로는 민중들의 분노를 잠재울 수 없을 때, 그리고 피착취 계급이 더 이상 지금까지의 방식과 시스템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때, 프랑스 민중들은 결연히 떨쳐 일어났고 세상은 뒤집어졌었다. 파리 코뮌 이후 147년이 지났고, 68혁명 이후 50년이 지난 지금 민중들이 다시 ‘혁명’을 호명하고 있다. 단지 구호에 지나지 않을 것인가, 아니면 혁명에 견줄만한 거대한 사회 시스템의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아직은 확답을 내릴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50년간 참아왔던 체제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민중봉기와 혁명으로 지배계급을 직접 단두대에 올려보았던 프랑스의 역사, 그리고 이러한 혁명적 전통 위에 세워진 민중들의 자부심. 유류세 인상 철회를 발화점으로 민중들의 분노가 터져 나온 것은 어찌 보면, 분노를 참고 있던 민중들의 이러한 전통적 자부심을 마크롱 정권이 크게 손상시켰기 때문은 아닐까. 민중들의 투쟁으로 쟁취하고 건설된 역사를 전부 무시해버린 마크롱 정권. 민중들의 분노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마크롱 정권을 정확하게 겨누고 있다.


6. 당신의 해방과 나의 해방, 그리고 전 세계 피착취자들의 해방은 하나의 문제
- 국제연대로 노란 조끼 운동의 진정한 승리를!



 31일 샹제리제 거리에 노란 조끼 동지들은 다시 모여서 2018년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이 현장에서 나는 다시 한 번 깊은 감동을 느꼈다. 팔레스타인 가족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보였고, 한 아이는 아버지의 목마를 타고 팔레스타인의 깃발을 흔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24일 투쟁에서 만난 동지들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체게바라 베레모를 쓰고 “나는 가자를 사랑한다. 팔레스타인의 자유, 팔레스타인부터 멕시코까지 모든 벽은 무너져야합니다.” 등의 구호가 적힌 노란 조끼를 입고 거리를 누볐던 무슬림 여성 동지. 우리는 24일 투쟁에서 함께 연행 위기를 겪었고, 29일 투쟁에서도 우연히 만나 함께 행진했고 31일에도 이렇게 만난 것이었다. 나부끼는 팔레스타인 깃발과 노란 조끼 동지들을 향해,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외쳤고 환호와 함성을 받았을 때, 그 감동은 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학교에서도, 교수에게서도, 돈을 주고도, 배우거나 가르침을 받거나 구매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전 세계 투쟁하는 민중들의 노래 인터내셔널의 “어떠한 높으신 양반, 고귀한 이념도 허공에 메인 십자가도 우릴 구원 못하네. 우리 것을 되찾는 것은 강철 같은 우리의 손”이라는 가사처럼.
 국적과 민족, 인종을 뛰어넘어 우리는 연대해야한다. 그저 그런 수많은 운동적 당위나 명제가 아니다. 현실이다. 혁명하기 위해서는, 노란 조끼 운동이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진정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연대하고 국제적으로 투쟁해야한다. 그리고 그 순간, 멕시코 해방투쟁 사파티스타 원주민 여성의 유명한 문장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당신이 나를 돕기 위해 이곳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과 나의 해방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함께 일해 봅시다.” 이 문장과 함께 알제리 출신 택시 기사와 이야기 나누며 교감했던 제국주의자들에 맞선 알제리 민족해방투쟁, 조선 민족의 독립운동,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까지 많은 순간들이 복합적으로 떠올랐다. 이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울려 내 가슴을 감동으로 수놓고 있었다. 전 세계 피착취자들의 단결과 해방을 위해 국제적으로 연대하고, 투쟁하자.

<2018.12.31. 샹제리제 거리 노란 조끼들 사이에서 목마를 타고,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들고 있는 아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노란 조끼 운동이 일시적 후퇴를 겪을 수는 있어도, 지금까지의 단순한 투쟁이나 시위와 분명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시작부터 한계를 상정하고 체제 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준비하는 일반적인 시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노란 조끼 운동은 일회성, 이벤트성 시위로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노란 조끼 운동이 전 세계 반 정부, 반 체제, 반 자본주의 운동에 던지는 질문이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불가능에 대한 도전, 체제에 대한 전면적 도전으로 발전하는 운동. 질문 아닌 질문, 정답 아닌 정답들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진짜 질문을 새롭게 던져야한다. 질문을 어떻게 던지느냐, 어떠한 슬로건으로 어떠한 투쟁을 펼쳐나가느냐가 향후 이어질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결정짓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질문은 무엇이 되어야하는가? 우리는 얼마나 다른 세상을, 얼마나 자유롭게 상상하고 있는가? “상상력에게 모든 권력을!” 68의 구호 중 하나를 다시 호명해본다. 힙합 그룹 에픽하이의 리더, 타블로가 노랫말에 인용한 바 있는 문장을 재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그리고 파리의 민중들과 전 세계 노란 조끼 동지들에게 온 마음 다해 연대의 인사를 보낸다. Je t'aime, gilet jaune !

“Genius is not the answer to all questions, 
but it is the question to all answ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