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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version - 'We are here', April 24, 2019

“We are here! Even if Macron doesn't want it, we are here!” - "On est là! Même si Macron ne le veut pas, nous on est là!" ...

2019-02-08

경찰에 체포되었던 고등학생 운동가의 인터뷰. 르망. 24시간 동안 체포되었던 고등학생이 증언한다


경찰에 체포되었던 고등학생 운동가의 인터뷰. 2월 6일자 Revolution Permanente 기사 번역

르망. 24시간 동안 체포되었던 고등학생이 증언한다

12월에는 장(보안 유지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다.)이 르망의 고등학생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19년 1월 17일, 그는 고등학교 앞에서 임의로 체포되어, 24시간 동안 경찰에 의해 구금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증언하고 있다.

- 인터뷰어의 질문(Q) : 12월에는 많은 도시와 마찬가지로 르망의 고등학생들이 거리에 있었다. 우리에게 이 기간의 하이라이트가 무엇인지, 왜 그랬던 것인지 말해줄 수 있나?

- 답변(A) : 우리의 요구는 파르쿠르스업(역자 주 : 마크롱식 신 입시정책. 관련 기사 참고 : https://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2343) 폐지 그리고 바칼로레아 학위의 국가적 가치를 끝장내는 대학·고교 정책 개악 철회, 교수직 2,600개 폐지를 철회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많은 시위와 봉쇄를 조직했다.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12월 3일 조용하고 좋은 분위기에서 발생했던, 첫 봉쇄 조직화에 직접 참여했다. 12월 6일 새로운 봉쇄 투쟁은 민주적으로 투표되었고, 절대 다수에 의해 결정되었다! 12월 6일 거리에는 1,000명 이상의 고등학생들이 모였다. 12월 한 달 동안 르망의 여러 고등학교에서 봉쇄 투쟁이 급증했고,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나는 그 조직에서 가장 활동적인 고등학생 중 한 명이며, 이 시위에서 여러 번 발언했다.

- Q : 1월에도 운동이 계속되었고, 그곳에서 당신이 체포되었던 것이 맞나?

- A : 고등학생들이 결집하여, 우리는 1월 18일 실제로 행동의 날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 앞에서, 1월 18일 목요일 전날에 아침 늦게 체포되었다. : 나는 도로 근처 인도에서 걷고 있었고, 경찰 3명과 함께 표식 없는 차량이 내게 다가왔다. 경찰이 내게 와서 처음에는 신원 확인을 하는 척 했다. 경찰들은 모든 고등학생들의 신분증을 조사했고 마지막으로 내 것을 조사했다. : 결과적으로, 이는 그들이 내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는 것, 이 술책은 우리를 겁주기 위한 의도였음을 보여줄 것이다.

 경찰은 내가 체포되는 동안 내게 이유를 알리고, 차량에 동행해야한다. 나는 그들에게 이유를 묻는다. 그러나 그들은 차량에서 한 번 설명해줄 것이라고 대답할 뿐이다.

 내가 집에 돌아가자마자,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울린다. 나는 노란 조끼 시위를 하는 동안, 1월 5일부터의 혐의 사실들이 밝혀졌다고 설명한다. 내 혐의는 다음과 같다고 들었다.

- 집단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
- 범죄를 저지를 목적으로 얼굴을 가린 것
- 공공 기관 수탁 기관에 대한 폭력

 이 혐의 사실들을 들었을 때, 나는 정말 놀랐다. 수단의 규모(체포, 조사...)와 가져온 비용 사이에서, 당국의 조치는 실제 발생한 사실에 비해 매우 과도했다. 맞다. 시위 중에 나는 스카프와 베레모를 머리에 착용했지만, 사진 속 내 얼굴은 완벽하게 인식 가능했다! 맞다. 나는 경찰 앞에서 당당하게, 발포된 최루탄을 뒤로 밀어젖혔다. : 그러나 이는 앞이 보이지 않고 질식을 유발하는 최루가스 앞에서, 생존 본능일 뿐이다!

 경찰은 그때, 나에 대한 체포가 오후까지만 지속될 것이라고 말하며, 내가 받아들이는 즉시 국선 변호사를 선임해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나에게 말한다. :

- 경찰의 질문(Q) : 당신의 건강 상태는 양호한가?

- 답변(A) : 그렇다. 

- 경찰 : 그렇다면 의사 방문이 필요 없겠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의사의 진찰을 원한다고 명시한다!

 경찰은 나를 중앙경찰서 Peixhan Boulevard 사무실로 끌고 간다.

 내 변호사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고, 성과 이름·주소를 물어보면서 심문을 시작한다. 그 다음 그들은 파일을 열어, 그날 내가 입고 있던 스카프와 베레모가 있는 일련의 사진을 보여준다. 나는 그들이 나에 대한 전체 파일, 고등학교 개인 일정, 이전 시위에서 확성기로 말하고 있는 나의 사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심문을 진행하던 경찰이 나에게 사진 속에 내가 있는지 물어본다. : 나는 솔직하게 진술하기로 결정했고, 내가 맞다고 말한다. 경찰은 내 스카프와 베레모를 집에서 가져오기 위해, 압수수색 준비서류를 찾지만, 다행스럽게도 그의 동료 경찰들은 그를 조롱한다. : “우리는 쟤가 그날 착용했던 것을 찾지 못할 거야! 그가 자백한 건 ‘요점에서 벗어난’ 쓸모없는 사실이야.”

 경찰관은 당황한 것처럼 보였고, 나에 대한 심문을 끝낸 뒤에 나를 경찰서 유치장에 보낸다고 했다. 나는 미성년자이기에, 경찰은 결국 오후 1시 ~ 2시쯤(보통 즉시 알려야함.) 어머니께 알리지만, 나는 오후 내내 견뎌야했다. 의사의 진찰이 끝나고 나면, 나에게 배당된 변호사가 와서 조서를 검토한 후, 나는 유치장으로 돌아간다. 잠시 후 경찰의 시스템에 파일이 생성된다. ; 경찰이 오후 5시쯤 돌아왔고, 마침내 어머니께 전화를 걸 수 있게 된다. 나는 그 순간, 다음날 아침에도 이곳을 떠나지 못할 것이며, 법정에 출두하기 위해 다음날까지 기다려야한다는 구실로 이곳에서 밤을 보내야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좋은 것은 연대가 빨리 건설되었다는 점이다. : 지역 언론에 보도된 경찰서 앞에서 지지 집회가 열렸다. 내가 여전히 구금되어 있는 동안, 다음날 나의 석방을 요구하는 고등학생들의 시위가 열려 법원 앞에서 끝났다. 그리고 언론이 다시 그 시위를 기사화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다음날 12시 30분 재판을 위해 법원으로 이송됐다. 따라서 나는 이제 구제 조치의 대상이며, 또한 기소의 대상이다. 변호사에 따르면, 나는 아마도 사회봉사의 위기에 처해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아마도 법 준수를 상기시키는 경고에 처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확실한 점은 나를 표적으로 삼아, 르망 경찰이 고등학생 운동을 통제하려 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고교 정책 개악에 반대하는 첫 번째 학교였다. 그리고 나는 가장 많이 결집한 고등학생 중 한 명이다. 게다가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 동지들이 2월에 차례로 경찰서에 소환된다는 사실을 방금 알게 되었다. : 탄압은 계속된다.

* 출처 :
http://www.revolutionpermanente.fr/Le-Mans-En-garde-a-vue-pendant-24h-un-lyceen-mobilise-temoig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