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함은 반혁명이다
- 상상력을 위한 브레인스토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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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rnand Kim
(블로거. 보헤미안 여행자를 꿈꾸는 자유로운 영혼. 2018년 12월, 파리에 1달간 체류하며, 노란 조끼 동지들과 현장에서 함께했다. 노란 조끼 운동이 가져다 준 충격과 감동을 잊지 못해, 여전히 마음속 어딘가에 노란 조끼를 품고 지구별을 헤매고 있다.)
얼어붙은 세상에 노란 조끼 운동이 질러놓은 불길은 10개월 동안 계속 불타오르고 있다. 이 글은 ‘68년 5월’ 이후, 50년간의 ‘지루함’을 깨고 일어선 노란 조끼 운동이 필자와 이 세상을 어떻게 자극했는지에 대한 ‘브레인스토밍’을 위한 이야기이다. 정답의 홍수 속에서, 좀 더 본질적인 질문을 제기하기 위한 과정이다. 이 글엔 질문이 가득할 뿐,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낡은 체제와 그만큼 낡은 운동에도 정답이 없는 것처럼. 우리에겐 거리에서 투쟁하는 노란 조끼와 실천만이 있을 뿐이다.
2018.12.27. 파리 10대학(낭테르), 사진 : Fernand Kim
“국가가 당신의 삶을 약탈한다”
“당신들의 활동에서 흥미로운 것은 상상력에 권력을 부여한다는 점입니다. 모두들 그렇듯이 당신들도 제한된 상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나이 든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 노동자계급은 종종 새로운 투쟁 수단을 상상해왔지만, 언제나 이 계급이 처해 있던 상황에 따라서 그랬습니다. ... 그런데 당신들은 훨씬 더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르본의 벽에 적혀 있는 말들이 그것을 증명해줍니다. 당신들에게서 무엇인가가 나와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뒤집어엎고, 우리 사회를 오늘날 이렇게 만든 것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가능성의 영역의 확대라고 부르겠습니다.”
- 1968년 사르트르와 꽁 방디의 대담 中 사르트르의 발언
“우리는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노란 조끼가 외쳤던 구호이다. 68년 이후 50년간 참아왔던 울분을 마크롱이 건드리고 말았다. 현재, 마크롱의 프랑스는 알제리 민족해방전쟁 이후, 가장 억압적인 체제이다. 엘리제의 미봉책으로도, 사회 운동 역사상 기록적인 탄압과 국가 폭력으로도, 이미 봉기한 민중의 분노를 잠재울 수 없었다. 지도부가 없으니, 기존 방식대로 노동조합 관료와 했던 것처럼 협상을 진행할 수도 없었다. ‘보도블럭 아래의 해변’을 향해 노란 조끼는 계속해서 행진하고 있다. 로터리와 톨게이트에서 노란 조끼는 새로운 사회적 실천 양식을 만들어냈다. 로터리와 톨게이트를 주요 거점으로 한 직접행동은 여태까지 사회 운동이나 대중 시위의 관객이었던 민중이 행위의 주체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낡은 운동과 낡은 체제, 이 모두에서 조명되지 못했던 민중은 로터리에서 상호부조와 직접 민주주의, 연대의 공동체를 형성했다. 불평등한 세상에 맞서 삶의 주인공으로 우뚝 선 것이다.
2018.12.19. 로베스피에르역 인근 ‘혁명’ 거리, 사진 : Fernand Kim
“모든 반란에는 이유가 있다”
“노란 조끼 운동이 그녀와 함께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기 이전, ... 얼마 전까지, 저는 자살을 생각했었습니다. 도저히 빈곤한 생활, 비참한 현실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저는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습니다.”
- 마히 프랑스(Marie France)
“이 운동은 시민들의 모임과 총회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비 조직화된 운동은 그 자체로 장점이자 약점입니다. 우리에게 더 엄밀한 조직이 있었다면, 더욱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 프리실라 루도스키(Priscillia Ludosky)
뜬구름인가, 맹아인가
노란 조끼 운동은 전통적 정치 분류 방식(좌파, 우파)으로 분석할 수 없다. ‘계급’이라는 동질성을 기반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복합적(heterogeneous) 공동체로 바라보아야한다. 그렇기에 ‘노란 조끼 운동이 계급투쟁이냐?’라는 엘리트주의적 우문은 그 자체로 스스로의 초라한 도그마티즘을 드러낼 뿐이다. 시작부터 ‘지도부 없음’을 표방한 운동에 ‘지도력 위기’ 운운하는 것도 마찬가지 우문이다. 그리고 이는 노동조합 조끼나 붉은 깃발이 아닌, ‘노란 조끼’로 스스로를 표현한 모습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비가시적 영역의 가시화, 50년에 걸친 정치적 퇴행 속에, 가려져왔던 민중의 도약. 여기에 마크롱 정권의 신 보나파르트주의 통치 스타일이 기름을 부은 것이다. 노란 조끼 운동에 의해, ‘마크롱주의’는 이미 실패했다. 전통적으로 사회당-공화당이 양분했던 정치 지형은 허물어졌고, 그 틈을 비집고 극우정당이 득세하고 있지만 혁명적 갈증을 메워줄 세력은 보이지 않는다. 이미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한 노동총동맹 CGT는 노란 조끼의 역동성에 한참 못 미친다. 엘리제에서 마크롱 정권과 협상하기 바쁜 관료의 모습을 보는 노란 조끼의 시선은 고울 수가 없다. ‘우리를 그저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투쟁하자!’고 외치며, 심지어 일부 노란 조끼는 지난 유럽 의회 선거 투표조차 거부하고 거리로 나섰다.
노란 조끼 운동은 그 자체로 대중의 욕망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을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최소한으로도 대표하지 못할 때, 그것이 수십 년간 누적될 경우, 어떻게 폭발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중요한 사례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기존의 낡은 운동은 이를 총화해낼 수 있는 능력도, 전망도, 태도도 없다. 이제는 ‘중앙 지도부를 거부한다.’는 외침에 냉소하기보다, 이러한 주장이 나타나게 된 정치사회학적 배경과 낡은 운동의 앙상한 실천을 반성해야할 때이다.
정치적 공백을 비집고 노란 조끼 운동이 등장했다. 그러나 로터리에서 삶의 주인공이 된 노란 조끼의 도약이 그저 뜬구름일지, 새로운 운동의 ‘맹아’일지 아직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자기 조직화’를 부단히 실천하며, 스스로를 초월하는 이들의 모습을 볼 때, 후자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노란 조끼 운동의 실천적 경험이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는 사회적 블록의 형성으로 진일보할 수 있을 것인가? ‘반정치’와 ‘상상력’의 변증법 속에서, 노란 조끼 운동의 출구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자기해방’을 키워드로 온 세상에 충격파를 던진 새로움의 도약. 그러나 당장 손에 잡히진 않는 새로움. 도그마티스트가 절대 잡을 수 없는 새로움. 노란 조끼 운동은 꼬여있는 실타래를 풀 수 있을 것인가? 실타래를 풀리게 했는가, 꼬이게 했는가?
“노란 조끼 운동이 전 세계 반 정부, 반 체제, 반 자본주의 운동에 던지는 질문이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불가능에 대한 도전, 체제에 대한 전면적 도전으로 발전하는 운동. 질문 아닌 질문, 정답 아닌 정답들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진짜 질문을 새롭게 던져야한다. 질문을 어떻게 던지느냐, 어떠한 슬로건으로 어떠한 투쟁을 펼쳐나가느냐가 향후 이어질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결정짓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질문은 무엇이 되어야하는가? 우리는 얼마나 다른 세상을, 얼마나 자유롭게 상상하고 있는가?”
- Fernand Kim, “내가 바리케이드이다!” : 들불처럼 번지는 노란 조끼 운동
“희망은 복종의 끈이다. 권력은 폭발할 위기가 발생하자마자 안전판을 조작하고, 내부 압력을 줄인다. 사람들은 권력이 변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권력은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하면서 적응할 뿐이다. 자신에 대항해 자신과 유사하지만 반대되는 권력이 세워지는 것을 용인하는 권력은 없다. 그런데 위계화된 지배의 원칙에 관점에서 볼 때 상대방을 완전히 섬멸하겠다는 분노를 갖고 두 적대 세력이 가차 없이 충돌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 그런 투쟁에서 광신적 물결은 가장 안정적인 가치들을 휩쓸어버린다. ... 역사를 보면 거대한 전투가 변변치 않은 분쟁으로 분해되고 변형되지 않았던 사례가 없다. 감압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현존하는 세력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체결된 원칙의 동의에서 온다.”
- 라울 바네겜, “일상생활의 혁명 : 젊은 세대를 위한 삶의 지침서” (주형일 옮김, 갈무리)
재전유(re-appropriation)
2019.03.16. 샹제리제 거리, 사진 : Philippe Rosenpick
“아무 것도 요구하지 말고, 모든 것을 접수하라”
사회적 담론의 재구성이라는 맥락에서, 노란 조끼 운동은 시스템에 맞서는 ‘저항의 언어’로써 기능하고 있다. “세상의 종말이나, 이번 달 말이나, 어차피 매 한가지, 같은 문제, 같은 죄악, 같은 투쟁”이란 슬로건을 앞세운 노란 조끼의 흐름 그 자체가 하나의 사회 운동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3월 16일 샹제리제 거리에서 벌어졌던 이른바 ‘재전유’ 투쟁이 단적인 사례이다. 노란 조끼와 블랙 블록은 명품 상점과 레스토랑 등에 대한 공격을 ‘재전유’라 명명했다. 이는 ‘정부가 부유세를 폐지했으니, 우리가 직접 부유세를 걷겠다. 우리의 투쟁은 자체적인 최저임금 인상이다. 프리마켓이다.’라는 슬로건으로 표현되었다.
“상징적으로, 지난 토요일의 ‘약탈’은 계급 지배를 되돌리려는 또 다른 방식의 투쟁이었다. ... 노란 조끼는 스스로가 원할 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고, 그저 모든 것을 접수해버렸다. 부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노란 조끼는 부자의 사치스런 이상향에 순응하고자 약탈하는 것이 아니다. 부자의 이상향이 노란 조끼를 때려 부수기 때문에, 저들의 전형을 파괴하려는 것이다.”
- <ACTA>, “3월 16일 : 빈곤한 이들의 전쟁”, 3월 26일자 기사
“... 사회비판에는 새로운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 내용과 형식의 변증법 및 부정의 문체가 특징인 ‘저항의 언어’일 수밖에 없다. ... 상황주의자 그룹에서는 개념들 간에 존재하는 기존 관계의 전도라는 예를 통해 그런 ‘새로운’ 언어를 창출하려고 노력했다. 의미 내용을 낯설게 만들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전복적으로 담아내는 그 구상을 상황주의자는 개념의 ‘탈취’라고 이름 붙인다. ... 그런 작업은 ‘탈취된’ 말을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전통적인 의미의 틀을 부수는 것이라 불러야 한다. 상황주의자는 개념의 ‘탈취’를 통한 이런 ‘언어 작업’이 기존 질서를 모두 교란하는 ‘폭력행위’라고 이해한다. 따라서 기 드보르는 그 ‘폭력행위’를 사회 비판 형태로 본다. ... ‘폭력행위’는 폭력개념의 재규정 및 ‘탈취’에 입각 ... 통상적 의미론과 일상적 상황, 즉 언어규칙과 경기규칙을 창의적이고 비타협적으로 돌파하는 행위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이 행위의 목표는 ‘규칙위반’을 통해 개인의 진정한 표현력을 고양하면서, 상실되거나 단절된 의사소통을 원상복구하고 분류 및 인식의 기본 틀을 바꾸는 것이다. ... ‘폭력’은 지향하는 바가 동일한 ‘전복’ 개념과 결부된다. ... 상황주의자의 전복 행동은 ‘규칙의 규칙’을 바꾸는 것, 즉 세계에 대한 사고와 인식, 분류의 기본 틀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한다.”
- 잉그리트 길혀홀타이, “1968. 시간여행” (정대성 옮김, 창비)
아름다움은 거리에 있다 - 상상력을 위한 브레인스토밍
2018.12.27. 파리 10대학(낭테르), 그림 : Kouka, 사진 : Fernand Kim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2018년 5월 루브르 박물관, 파리 10대학, 그리고 스트릿 아티스트가 합작하여 파리 10대학 캠퍼스 Maurice Allais 건물에 그려진 그래피티 중 하나이다. ‘68년 5월’ 투쟁 50주년을 기념하여, 루브르 박물관 전시물을 스트릿 아트를 통해 오마쥬하는 기획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위 사진은 콩고계 프랑스인 예술가 Kouka의 작품이다. 작품 하단부에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낙서로 도배가 되어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필자는 원 작품보다 아래의 낙서에서 더 큰 인상을 받았다.
“아름다움은 거리에 있다, 소위 ‘아름다운’ 이미지에 대한 소비는 예술가에게 상처를 줄 뿐이다, 예술 작품이란 무엇인가? 쟝클로드‘반달’이다, 그리스 유물은 당신 것이 아니야, ‘나조차도, <라 셀렉시옹>교육개악에 반대한다!’, 사보타주에 아름다움이 있다, 엿 같은 박물관화! 대혼란 만세!”
텍스트를 준비하면서 현지의 노란 조끼 동지와 집담회 참가 예정자에게, ‘각자가 생각하는 노란 조끼 운동을 간단히 표현하고, 집담회에서 논의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 사전 질문을 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를 토대로, 자유토론과 총괄 질의응답을 진행하며, ‘브레인스토밍’ 해보자. 노란 조끼의 역동성, ‘68년 5월’의 상상력과 우리는 어디에서 교차하며 만날 수 있을까?
“우리는 엘리트 자본주의 체제의 노예가 되었다. 그리고 노란 조끼는 되찾아온 자유, 평등, 우애를 표상한다. ‘단지 욕망에 의한 충동은 노예제도일 뿐이다. 그러나 합의된 법에 대한 자발적 복종은 시민적 자유이다.’(루소, ‘사회계약론’)”
“우리의 정치 체제는 결코 민주주의가 아니다. 우리는 법적인 측면에서, 그저 최고 부자에게만 이윤을 가져다주는 체제를 개혁하고자 한다. 언론은 거대 초국적 자본에 지배당하고 있으며, 그들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집중 선전할 뿐이다. 우리는 언론의 독립성을 요구한다. 언론은 민중의 소유이다. 저들은 영국 대처 집권기처럼 프랑스를 뜯어고치려한다. 그리고 모든 걸 사유화하고 있다. 우리의 경제, 정치 시스템은 유럽연합과 미국의 생산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의 주권을 되찾고,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고자 한다.”
“가시화된 빈곤이 빛나는 순간, 그리고 그 빛 속 또 하나의 어둠들에 대해.”, “혁명적 방법론의 가능성과 한계, 혁명의 혁신과 재참여”, “반자본주의 투쟁”, “불가능에 대한 도전”, “여전히 분출 중인 활화산 같은 대중 시위”, “자유”
* 함께 읽어보기 (준비 텍스트와 함께 미리 읽어보면, 알차고 풍부한 집담회를 이어가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1. [진보평론 기고글 2019.01.]
https://emmanuelmacrondemission.tistory.com/3
“내가 바리케이드이다!” : 들불처럼 번지는 노란 조끼 운동
2. [코뮤니스트 기고글 2019.04.]
https://emmanuelmacrondemission.tistory.com/178
“우리는 여기 있다! 마크롱이 원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여기 있다!”
3. [아나키의 여름 준비 텍스트 2019.08.]
https://emmanuelmacrondemission.tistory.com/246
노란 조끼 운동 개괄 - 뉴스 번역 요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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