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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here! Even if Macron doesn't want it, we are here!” - "On est là! Même si Macron ne le veut pas, nous on est l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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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0
9월 21일 : 위대한 ‘바리케이드의 밤’을 호소한다 - “어둠 속에서 불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9월 17일자 ACTA 기사 번역
우리는 익명의 호소를 받았다. 일부 노란 조끼는 오는 토요일 시위 이후, 집으로 돌아가지 말고, 거리에 남아 투쟁을 이어가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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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노란 조끼는 너무 온순하다. 우리는 스스로 거칠고 난폭하고, 술 취한 파괴자 행세를 하며 투쟁에 활기를 불어넣지만, 폭력배로 취급당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너무 온순하고 순진하다. 우리는 솔직하고, 관대하며, 너무 감정적이다.
12월 1일, 우리의 평온했던 투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날 저녁, 우리는 파리 서부를 장악했다. 우리는 관공서로 진격하며, 하나씩 차근차근 불태울 수 있었다. 우리는 권력을 대혼란에 빠뜨렸고, 경찰 역시 사방에서 발포하며 다가왔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날 저녁, 우리는 더 멀리 진격하고, 더 많은 걸 쟁취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날 우리는 왜 집에 돌아가기로 결정했을까? 특유의 온순함, 얌전함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계속 거리에 머물러있었다면, 아마도 승리를 쟁취했을 것이다. 현 정부는 사퇴했을 것이다. 저들은 다급하게 도망쳤을 것이다. 관료는 잎사귀처럼 흔들렸고, 진부한 우버 택시처럼 ‘걸음아 나살려라’ 도망쳤을 것이다. 우리는 일종의 주도권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우리 노란 조끼는 아직까지, 밤거리를 투쟁으로 수놓은 적이 없었다. 이제 거리를 투쟁의 현장으로 되돌려놓을 시간이다. 이게 바로 노란 조끼가 9월 21일, 위대한 ‘바리케이드의 밤’을 호소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5시, 6시가 되면, 왜 항상 해산에 수긍하는가? 이제는, 밤이 깊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금 타격투쟁에 나서보자.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지난 11월 17일 이후, 너무 많은 분노가 흘러 넘쳤다. 노란 조끼 운동은 정말 독특하고, 분노와 열정으로 가득하기에, 도저히 멈출 수 없다. 노란 조끼 운동은 우리에게 유일한 희망의 불꽃이다. 우리는 노란 조끼이다. 우리는 그렇고 그런 사회 운동이 아니라, 투쟁하는 민중이다.
우리에겐 다음 투쟁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 ‘모든 조건이 갖춰졌을 때에만 혁명이 다가온다.’,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다’며, 항상 다음을 기약하는 영원한 투쟁의 밤. ‘현재 투쟁은 다가올 경제 위기 대응 투쟁도, 노동조합이 원하는 투쟁도, 10년 20년을 내다보는 투쟁도 아니기에 당장 함께 할 순 없다.’ 이런 부류의 생각은 패배주의 문화의 산물이다. 그러나 노란 조끼에겐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노란 조끼는 승리할 것”이라고 12월 1일 개선문에 쓰였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승리를 쟁취할 것이다.
모든 게 들어맞는 완벽한 조건 같은 것은 없다. 우리는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 긴급성을 이끌어내는 건 우리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사회적 폭발을 위한 모든 요소가 한데 뭉쳐있다. 우리 노란 조끼는 분노의 도화선이 되어야한다. 우리는 다른 이를 투쟁에 나서도록 만드는 선봉대이다.
투쟁의 밤에 불씨를 당기자! 지난 겨울, 우리는 로터리에서 지내며 추위를 달래고자 타이어와 나무판자에 불을 피웠었다. 그때 우리는 모든 상황을 감수하며 투쟁하기로 굳세게 결의했다. 봉기를 위해 떨쳐 일어난 모든 동지들에게 힘차게 화답하자.
밤과 낮. 낮과 밤. 그 어디든 모두 때려 부수자. 21일부터 파리는 홍콩이다.
이 사회에서, 저들이 우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이다. 언론은 거대한 권력으로 무장하고 있다. 우리를 눈에 띄지 않게 만들 수도 있다. 언론은 매우 감각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21일 밤, 언론은 노란 조끼 투쟁의 밤에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할 것이다. 21일 밤 투쟁은 어느 순간, 여태까지의 우리 투쟁을 모두 압도하며, 갱신할 것이다.
이 투쟁을 너무 낭만적이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바리케이드의 밤’은 전술적이며, 깊은 전략적 고민의 산물이다.
지난 역사가 우리에게 말해준다. 1968년 5월 10일 항의 운동은 여전히 대도시 고등학생, 대학생에게만 국한되어있었다. 그날 오후 9시 30분, 학생들이 모여 라탱 지구(quartier latin)에 바리케이드를 건설했다. 그리고 새벽 5시 30분까지 현장을 사수했다. ‘바리케이드의 밤’은 5월 투쟁을 보편화하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이 투쟁이 펼쳐진 이틀 동안, 그때까지 움직이지 않던 노동 부문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5월 13일 모두를 놀라게 한 비공인 총파업이 선포되기에 이르렀다.
밤은 분노를 응집시키고, 불타오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동안 묻혀왔던 정의에 대한 갈증을 토해낼 힘이 있다. 밤은 우리를 매료시키며, 활기차게 만들어준다. 바리케이드의 밤과 함께 모든 분노가 터져 나온다. 그리고 마침내 정당하고도 강력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해가 질 때쯤에는 휴식을 취하자. 하루 종일 차올랐던 감정에서 잠시 벗어나보자. 혁명의 건강을 위해, 맥주나 와인을 한잔 마시자. 그리고 오후 10시나 11시쯤 다시 타격 투쟁에 나서자. 우리가 오리라 예상치 못한 곳을 향해, 대규모로 몰아치자. 구호와 함성이 스스로 울려 퍼질 것이다. 우리는 울려 퍼지는 구호를 따르는 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부당하게 체포된 동지들을 구출하기 위해, 18구 Évangile 거리에 있는 경찰서와 창고를 공격할 수 있다.
우리는 파리 중심부 마레(Marais)에서 파티 참가자와 어울리며, 붐비는 인파 속에서 혼란을 일으키고, 이를 통해 경찰을 미치도록 만들 수 있다.
또한 우리는 16구의 삭막한 거리로 진격할 수 있다. 부자가 편안히 잠들지 못하도록, 거리를 접수하고 휘젓고 다닐 수 있다. 지난 12월, 아름다웠던 날처럼 봉기의 아드레날린이 퍼지고, 저들은 대혼란에 빠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우리는 국회에서 영광스러운 밤의 유산(patrimoine nocturne)을 조직할 수 있다.
우리는 새벽에 현장을 접수하고, 다시금 거리를 뒤집어놓을 수 있다.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우리는 힘의 균형과 당일 현장 상황에 따라, 위의 여러 전술 중 하나를 결의할 것이다.
어둠 속에서, 불보다 아름다운 건 없음을 기억하자. 불길은 모든 봉기를 일깨워주는 상상력이다.
노란 조끼는 승리하리라 (YELLOW GILETS TRIOMPHERONT)
* Source (출처) :
https://acta.zone/21-septembre-appel-a-une-grande-nuit-des-barricad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