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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version - 'We are here', April 24, 2019

“We are here! Even if Macron doesn't want it, we are here!” - "On est là! Même si Macron ne le veut pas, nous on est là!" ...

2019-07-16

노란 조끼 운동이 침체되고 있다고?! ... (웃기고 있네) 6월 20일자 Paris-Luttes.Info 기사 번역


 노란 조끼 운동은 6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다. 초창기부터 어떤 사람들은 다음 문장을 주문처럼 외워댔다. : “노란 조끼 운동은 침체되고 있다, 노란 조끼 운동은 침체되고 있다.” 나는 운동이 끝나려면 한참 멀었다고 확신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래의 글은 개인적으로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좌우를 막론하고(특히 우파에서) 노란 조끼 운동이 끝났다고 말한다. 빌어먹을!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노란 조끼는 실재하는 운동이다. 과자 부스러기 몇 조각을 던져준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단순한 분노가 아니다. 우리는 6개월 전부터 떨쳐 일어났다. 나는 우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오, 안 돼, 나의 친구들.

 우리는 연대와 단결의 힘을 경험하며, 정치의식을 더욱 깊게 함양했다. 그리고 우리는 공통의 방향과 일정한 우선순위에 대해 합의했다. 요구안에 대한 합의도 도출했다. 우리는 거의 모든 정치적 술수를 배격했다. 경찰을 물리치고, 정부도 물리쳤다. 우리는 수년간 억눌려왔던 사회적 쟁점을 당차게 전면에 내세웠다. 기후 문제와 이 쟁점들을 결합시키고자 노력했다. 다른 투쟁들과의 공조가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미신고 집회’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또한, 언론과 정부의 거짓말과 폭력을 집중 조명했다. 일반적으로 쉽사리 함께 모이지 않던 다양한 이들을 결집시켰다. 우리는 연대와 나눔을 통해 집결 장소를 조직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립에서 빠져나오도록 만들었다. (점거 투쟁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톨게이트를 무료로 개방했고, 홈리스(SDF. Sans Domicile Fixe)에게 의식주를 제공하고자 ‘약탈’ 투쟁을 벌였다. 시위 참가인원 계산 시스템을 구축했고, 총회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전례 없던 희망의 물결을 일으켜 대중 의식을 각성시켰다. 우리는 MEDEF(프랑스 전경련) 건물을 포위했었고, 그들은 Manu(마크롱의 별칭)에게 연락해서 이를 해산시켜달라고 했었다. 그리고 우리는 엿 같은 “지상의 챔피언”에게 무릎을 꿇어야했다. 솔직하게, 우리가 지난 6개월 동안 얼마나 멀리까지 왔는지 살펴보자. 자랑스러울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하는 것은 모두에게 식은 죽 먹기이다.

 최근에는, 아무리 사소한 상황에서도 저들은 우리를 갈라놓기 위해 분열책을 쓰고 있다. 모든 수단과 방법, 경찰, 사법부, 언론 등을 총동원하여 초창기부터 끊임없이 우리를 탄압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투쟁 현장에 있다. 그리고 여전히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우리가 저들의 특권에 위협이 되지 않았다면, 권력은 우리를 침묵시키기 위해 그렇게 수많은 방법을 사용했겠는가? 우리는 그저 파열구를 만들고 있는 것뿐이다. 동지들이여, 이게 바로 우리가 다시 계속해서 몰아쳐야하는 이유이다. 마크롱은 어수선한 체육관에서 12시간 동안이나 ‘거짓 토론’을 펼치기 위해 수백만 유로를 탕진했다. 대형 복합 미디어는 여러 채널을 통해 우리와 대화를 하는 척 했다. 이러한 광대 짓거리는 그저 우리를 염두에 두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었다. ‘대화’라는 개념은 많은 이들이 자신의 관점을 서로 공유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점에서 거짓 토론은 크게 실패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저들의 거짓말을) 거의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인종차별주의자, 성소수자 혐오자, 여성 혐오자, 귀족 옹호론자(정말 열심히!), 심지어 노골적인 소아성애자 등이 노란 조끼의 일부분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이 운동은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적인 어조로 이야기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정치·언론 권력은 체계적으로 모든 운동이나 개인을 어떻게든지 ‘파괴적’이라거나 (지나치게) ‘혁명적’이라고 비난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가 저들의 표적일 때에는 위와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저들의 입장과 일치할 때에는 갑자기 진실을 외면하면서, 기회주의적으로 교활해진다. 그것은 주류언론처럼 식상하고 철지난 논의를 반복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교활해져서는 안 된다. 깊이 없는 논의를 어리석게 반복해서도 안 된다. 논의를 진전시키려면, 현장에 밀착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운동의 잠재력을 놓치게 된다. 노란 조끼가 된다는 건 간단히 말해, 진정한 시민 토론을 쟁취하기 위해 정치적 힘을 되찾는 것이다. 그리고 이 토론에는 우리가 토론할 수 있는 그 어떤 정당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인종차별주의, 페미니즘, 개인주의적 사회에서 똘레랑스(tolerance)의 부족, 생태환경 등에 대한 토론에서 말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주제들은 유권자를 분열시키거나 유인할 때만 사용되어왔다. 즉, 유권자들은 토론되지도 않고, 그저 무시당하거나, 사기꾼들에게 선거 목적으로 서투르게 이용당하거나, 부르주아지 흡혈귀 계급에 호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부르주아지 흡혈귀들은 사회의 절대 다수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 내가 순진한 엘리트주의자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무지(ignorance)가 앵똘레랑스(intolerance)의 토대에서 자란다고 확신한다. FN(국민전선. Front National)이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지역은 이민자와 후손들이 가장 적게 사는 지역이다. 이러한 사실은 앵똘레랑스를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는 토론 주제이다. 간단히 말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렇게 균열을 내고, 선거 승리를 위한 문제제기를 통해, 냉소적인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들어 편견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시민 발의 국민투표(RIC)의 경우를 보자. 만약, 정치적 목적 없이 우리 생각을 보다 건강하게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특정 정당에 기대지 않기로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노란 조끼 운동이다. : 정치미디어 동물원이자 소시지 박람회(역자 주 : 기성 제도권 정치를 풍자하는 의미로 사용)를 뛰어넘은 운동. 그들이 서로를 물어뜯고, 탁상공론을 벌이고, 통탄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재밌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게임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오락 거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땅콩 삼아서 그들에게 2~3표를 던져주었다. 그러나 유럽 (선거) 오락은 끝났고, 어느 쪽에서도,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명백한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다. 이게 바로 이 운동이 초창기부터 이해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 투쟁을 끝낼 때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우파에 투표하든지, 좌파에 투표하든지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굳건하게 단결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운동의 미래를 모든 투쟁의 결합으로 전망한다. 왜냐하면 이 운동이 모든 투쟁의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모든 노란 조끼의 슬로건이 있다.

 향후 있을 다양한 집회, 시위, 행사에서 노란 조끼는 힘차게 등장해야한다. 우리의 전반적인 전망을 확고히 하기 위해, 노란 조끼는 잘 드러나야 한다. 다른 투쟁들도 우리의 일부이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싸워야한다. 우리는 강고한 블록을 형성해야한다. 우리 앞에 쓰러뜨려야하는 거대한 마스토돈(mastodon)이 서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홀로 성공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스토돈을 땅바닥에 쓰러뜨리는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시민들의 힘으로 우리 모두를 억압하는 구조를 무너뜨릴 것이다. 그렇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가치가 있는 ‘혼란’이다. 우리 안에서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이들이 반대해야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이런 맥락에서만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노란 조끼 운동이다. 우리에게서 ‘정치’를 빼앗아간 체제에 맞서, 스스로의 토론을 건설하기 위해 투쟁은 함께 전진하고 있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정치인과 언론의 탁상공론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위는 진정되고 있다. 우리는 이를 인정해야한다. 그러나 이 운동이 어디에서부터 발발했는가? 그저 발발한 곳에서 머물러있는가? 운동은 진화하고 있다. 그게 전부다. 어쩌면 다시 꽃피울 것이다. 우리는 최소한 이를 예상해볼 수 있다. 나는 이 운동에 대한 마크롱의 반응을 보았다. 그는 경찰과 사법부, 언론을 동원하여 탄압을 가했고, 그저 미봉책으로 민중의 분노에 뚜껑을 덮어놓았을 뿐이다. 정확히 이 지점이다. 게다가 그의 새로운 연설 방식, 변화를 원치 않는 정치노선, 경청하는 능력의 총체적 부족 등을 감안할 때, 마크롱은 간단하게 전 사회적으로 탄압을 확대시키고, 이를 각 부문과 투쟁을 향해 더욱 노골적으로 퍼트리고 있다. 많은 이들은 이미 마크롱 체제에 아주 지긋지긋해서 투쟁을 벌이고 있다.

다른 이들도 떨쳐 일어날 것이다. 이미 일어나고 있다.

 예산 삭감, 구조조정, 압박으로 인한 그/녀들의 희생, 파업투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 무엇이든지 구매하고 소비하기 위해 사회적 투자를 중단하고 있는 권력 등으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친 의료 종사자와 응급 의사들.

 일터가 사유화되고 민간 자본에 매각되면서, Naicheune 신생 기업의 악랄한 경영 방침에 혹사당하는 철도 노동자들. 

 특정 교외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위대한 자본주의적 희망’에서 배제 당했고, 2등 시민으로 치부되어 희생당하고 있다. 그 사람들이 감히 입을 열어 정부에 대항하는 목소리를 내면,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가 겪어왔듯이, 최루 가스 발포 등의 탄압으로 인해 천식 발작, 심장 마비 등을 일으켰다. 이것만으로 설명하기엔 충분하지 않다. 심지어 경찰에 의한 살인이라는 보너스가 추가되기도 했다. 가족들까지 괴롭힘을 당해야했고, 감히 정의를 외쳤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야했다.

 학생 수는 증가하는 반면에 교사 확충은 이뤄지지 않고, 학기가 끝나고 해가 지날수록 노동조건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교사들.

 다시금 소부르주아지의 독점 이윤을 위해, 2배속으로 빨라진 심각하게 불평등한 교육 계획에 고통당하는 학생들.

 사회적, 생태적 관점에서 우리에게 닥칠 재앙적인 미래가 무엇인지 잘 이해하고 있는 청년들.

 환경운동가들은 ‘EELV(유럽생태녹색당. Europe Écologie - Les Verts)에 투표하는 것이 녹색으로의 전환을 이끌 것’이라며, 언제나 전면에 나서고 있다. LREM(전진하는 공화국. La République En Marche)과 언론은 초국적 자본과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유기농을 애용하는 개인의 양심을 비난함으로써 이와 같은 투표에 반응할 것이다.

 사회적 배제의 첫 번째 희생자인 미등록 이주민들은 살기 위한 기본적 권리조차 부정당하고 있다.

 일부 집배원들은 1년 넘게 파업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공공 서비스를 파괴하는 불도저 같은 공격에 맞선 투쟁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한평생을 헌신하며 살아온 은퇴자들은 끊임없이 착취당한 노동의 허무한 결실을 목도하고 있다. 은퇴자의 대부분은 불안정한 삶에 내몰리고 있다.

 실업자들은 부르주아지에게 낙인찍혀 죄책감을 느낀다. 부르주아지는 실업자들에게 노동을 하라고 명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자리를 없애고, 실업률 하락에 대한 좋은 통계 수치를 얻기 위해 실업자들을 명부에서 지워버린다.

 이미 상당하게 쌓여있는 위와 같은 목록은 불행하게도 완벽한 것이 아니며, 아직도 차고 넘친다. ... 그것은 매우 방대하고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우리 모두가 한줌 부르주아지와 이 체제에 맞서며 느끼는 엄청난 불만과 답답함처럼 말이다. 그러나 부르주아지는 매일 우리의 피를 빨아먹으며, 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위에 군림하면서, 엿같이 살아가는 시민들, 고통 받는 사람들,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무시하고 부정한다. 부르주아지는 이 사회의 암적 존재이다. 심지어 말기 암이다. 우리는 그 종양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느끼는 불만과 답답함이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해답을 제시할 것이다. 그렇다. 이제 그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다. 단지 혁명적인 ‘이론’만으로 우리에게 대체 무엇이 남겠는가.

 더구나, 그것은 아주 명확한 것도 아니다. 나는 그것을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끔씩 무작위로 떠오를 뿐이다. 이 대목에서, 당신의 역할은 무엇인가?

 노란 조끼들이여, 활짝 웃어라, 이것은 단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모험의 시작일 뿐이다.

* 출처 :
https://paris-luttes.info/le-mouvement-des-gilets-jaunes-s-1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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