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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version - 'We are here', April 24, 2019

“We are here! Even if Macron doesn't want it, we are here!” - "On est là! Même si Macron ne le veut pas, nous on est là!" ...

2019-07-07

[Part 2/3] 2019년 4월 18일자 AFP의 부상자 인터뷰 번역 "프랑스 시위에서 실명을 당한 이후의 삶"


프랑스 시위에서 실명을 당한 이후의 삶



Gwendal LEROY : 27세, 2019년 1월 19일 Rennes에서 부상당함.

 “저는 그것이 인생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제 스스로 받아들였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왜 그곳에 있었나요?

 노란 조끼는 모든 영역의 사람들을 함께 불러 모았습니다. 실업자, 노동자, 은퇴자, 모든 종류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 모두 거리에서 함께 했고, 그것은 진정으로 시민운동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날, 우리는 결정했습니다. 정말로 떠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6시경이었고, 우리는 2시간 가량 운전을 했습니다. 버스정류장 근처의 길을 따라갔는데, 고무탄환이 제 발에 떨어졌습니다. 소음을 듣고 나서, “이게 뭐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그 후, 저는 섬광과 폭발을 목격했습니다. 그 즉시 저는 무언가 제 얼굴을 타격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병원에서 누군가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제 왼쪽 눈꺼풀을 들어 올렸고, 바로 그때 저는 상태가 나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가 “지금 곧장 저 사람을 진찰하자!”고 소리쳤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저는 그것이 인생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제 스스로 받아들였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이런 상황이 현실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의자에 앉아있고, 10~15초 동안 주위 모든 것이 여러분을 타격한다고 가정해보세요. 여러분은 “아, 그래. 나는 실명했었구나.”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부상을 당하기 전에, 저는 지게차 운전사였지만, 지금은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구직 활동”에 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멀쩡한 두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과연 누가 “외눈박이”인 사람을 고용하고 싶어 할까요?

 인터뷰어 Laurent Geslin와 Aurelia Moussly에 따르면, Gwendal Leroy는 소송을 제기했다. 27세 Gwendal Leroy는 2019년 1월 19일 Rennes, Brittany의 제10차 노란 조끼 시위에서 부상을 당했다. AFP는 2019년 3월 8일 북서부 프랑스 La Foret-Fouesnant에 있는 그의 집에서 인터뷰를 했다.


Fiorina LIGNIER : 20세, 2018년 12월 8일 파리에서 부상당함.

 “저는 두더지처럼 삽니다.”

당신은 왜 그곳에 있었나요?

 이전까지 저는 시위에 전혀 참여한 경험이 없었습니다. 저는 정치에 관심이 없습니다. 마크롱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저는 그가 무언가 변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저 비겁하게 현실을 외면해버렸습니다. 프랑스는 세계에서 6번째 경제대국입니다. 그러나 연금수령자는 일을 해야만 합니다. 이건 불합리합니다! 그래서 4차 시위가 있기 전날, 남자친구 Jacob과 함께 파리에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오후 2시경 파괴자들이 상점 유리창을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샹젤리제 위편 오른쪽에서 평화로운 노란 조끼 수백 명과 함께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파괴자가 없었고, 아무도 얼굴을 가리거나 공격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Jacob과 저는 노란 조끼를 입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 상점은 문을 닫은 상황이었습니다. 경찰특공대는 우리가 퇴각하는 것을 가로막았습니다. 경찰이 몰려왔고, 바로 그때 저는 고무탄에 피격을 당했습니다. 저는 온몸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몇 초 동안 잠시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저는 눈을 되살리기 위한 1차 수술을 받았고, 파리에서 16일 동안 병원에 입원해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얼굴을 되살리기 위한 2차 수술도 받았습니다. 병원에서는 그 즉시 제게 실명이 되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지금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저는 안구를 제거할 예정입니다. 안구가 움직일 때마다, 저를 매우 고통스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저는 항상 잠에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어지러움을 느끼기 때문에, 너무 오랫동안 서있을 수 없습니다. 눈꺼풀을 여는 근육이 파열되어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제가 샤워를 할 때, 눈꺼풀이 저절로 벌어지고 저는 눈을 감을 수 없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읽을 수도 없습니다. 제 삶은 완전히 바뀌었고, 모든 일에 시간이 더 많이 걸립니다. 심지어 저는 10분간의 가사노동에도 숨이 막힙니다. 창문은 거의 열지 않으며, 저는 두더지처럼 삽니다. 저는 환상통을 앓고 있습니다. 모금 운동 덕분에, 저는 50,000유로라는 놀라운 기부를 받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연대!

 인터뷰어 Clement Melki와 Agnes Coudurier에 따르면, Fiorina Lignier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경찰 징계 기관은 조사를 진행 중이다. 20세 Fiorina Lignier는 2018년 12월 8일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발포된 최루 가스 탄환으로 인해, 눈에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온라인 모금 운동을 통해, 그녀를 위한 50,000유로 이상의 성금이 모였다. AFP는 2019년 2월 13일 북부 프랑스 Amiens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인터뷰를 했다.


Jean-Marc MICHAUD : 41세, 2018년 12월 8일 보르도에서 부상당함.

 “제가 마침내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때, 저는 부인의 포옹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당신은 왜 그곳에 있었나요?

 우리는 말썽을 피우려는 것이 아니라, 평화적으로 시위하기 위해 그곳에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경찰을 때리고 싶었다면, 아내와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거대한 행렬에 합류했을 것입니다. ... 그러나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고 부자만을 위하는 뒤틀린 정치인들에 맞서, 목소리를 외치는 것은 우리의 젠장맞을 권리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4시 30분, 5시경부터 상황은 안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최루 가스와 고무탄을 발포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찰 부대가 몰려왔습니다. 우리는 자리를 떠나 벽 뒤에 몸을 숨겼습니다. 저는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었고, 그들은 5~6미터 거리에서, 최대 7미터 거리에서 개잡듯이 저에게 발포했습니다. ... 저는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병원 무균실에서 깨어났습니다. ... 그 다음 제 부인이 방호복을 입고 병실로 왔습니다. 저는 울었습니다.

지금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저는 현재로써 지금 당장 고작 여기에서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모든 희생자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리적으로 보면, 저는 괜찮습니다. 저는 여전히 투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는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었습니다. 실명을 하는 것은 매우 곤란한 문제입니다. 저는 운동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바다에서 카약을 했고, 낚시를 하곤 했었습니다. ... 저는 이제 그 수많은 것들을 더 이상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원예사였습니다. 저는 포도 재배업자를 위해 덩굴 가지치기를 하겠지만, 이제는 3D 화면을 볼 수 없습니다. 저는 더 이상 제 아내를 팔로 끌어안을 수도 없습니다. 심지어 거울 속 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도 없습니다. 저는 그때 이후로 면도를 하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제가 마침내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때, 저는 부인의 포옹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인터뷰어 Benoit Petit와 Elodie Le Maou에 따르면, 경찰 징계 기관은 조사를 진행 중이다. "Jim"으로 알려진 Jean-Marc는 프랑스 서해안 Oleron 섬에 살고 있는 원예사이다. 2018년 12월 8일 부상당한 이후에도, 그는 계속 시위에 참여해왔다. AFP는 2019년 2월 4일 그를 인터뷰했다.


Patrice PHILIPPE : 49세, 2018년 12월 8일 파리에서 부상당함.

 “그러나 여러분이 실명했을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왜 그곳에 있었나요?

 저의 첫 시위였습니다. 저는 낙천적인 기분으로 샹젤리제로 향했습니다. 파리는 상징적인 곳입니다. 수도입니다. 제 아버지는 예전에 경찰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확실히 경찰을 때리기 위해 시위에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전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11시경, 저는 처음으로 손목에 고무탄을 피격 당했습니다. ... 폭력은 점점 더 강렬해졌습니다. 노란 조끼들이 샹젤리제에서 보도블록을 뜯어내기 시작했습니다. ... 그때 저는 잠시 자리를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 우리는 새장에 갇힌 비둘기처럼 덫에 걸렸고, 사방이 둘러싸여 막혀있었습니다. ... 저는 공격적이지 않은 태도를 보이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저는 경찰특공대에게 저를 내보내달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 그들이 발포한 수류탄으로 인해 제 귀는 먹먹해졌고, 저는 기절했습니다. 그리고 몇 초 후에 저는 눈에 고무탄을 피격 당했습니다. 저는 비틀거렸습니다. ... (저는 그 당시) 제 모습을 처음 보았던 시위자를 기억합니다. 그는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고, 저는 정말 무언가 나쁜 일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몇 걸음 더 비틀거렸고, 이내 땅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지금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저는 안구 적출을 하지 않아도 되기에, 충분히 ‘운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망막과 시신경 뒤의 공간은 파괴되었습니다. 제 눈은 절대로 다시는 기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 저는 25년 동안 트럭 운전사였습니다. 저는 그 일을 좋아했습니다. 저는 특수 수송원으로 근무했습니다. ... 저는 14세 제 딸을 위해 강해져야합니다. 제가 우울증에 빠져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실명했을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 비록 운동이 사라진다고 해도, 저는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 저는 제 눈가의 미소에서, 소위 ‘비(非)살상무기’에 대항하는 훨씬 더 중요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인터뷰어 Benoit Petit와 Elodie Le Maou에 따르면, Patrice Philippe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경찰 징계 기관은 조사를 진행 중이다. 49세 Patrice Philippe는 프랑스 남서부 Lons에 살고 있다. 그는 2018년 12월 8일 파리 노란 조끼 시위 도중, 고무탄에 피격 당해 오른쪽 눈을 실명했다. AFP는 2019년 3월 21일 그를 인터뷰했다.



Cedric POSE : 34세, 2018년 11월 27일 Reunion 섬 La Possession에서 부상당함.

 “저는 조금씩 제 삶에 적응해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왜 그곳에 있었나요?

 저는 그날 시위를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노란 조끼를 지지했지만, 행진 중이었던 친구들을 위해 집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저는 요리가 준비되었다고 친구들에게 말하기 위해, 거리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경찰 고무탄에 의해 눈을 피격 당했습니다. 저는 경찰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저를 표적으로 삼았고, 제 친구들은 경찰이 제게 발포한 것이라고 확인해주었습니다.

지금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저는 왼쪽 눈이 완전히 실명되었고, 오른쪽 눈의 시력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저는 조금씩 제 삶에 적응해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혼자 작은 집을 가지고 있지만, 현재로써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 당장 많은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삶이 힘듭니다. 요즘 제 친구들은 저를 보러옵니다. 제가 어떻게 지내는지 보러 오지만, 부상으로 인해 친구들과 함께 정말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습니다.

 인터뷰어 Mahdia Benhamla에 따르면, Cedric Pose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조사는 열리지 않고 있다.


Ninef RADJAH : 36세, 2019년 1월 12일 Toulon에서 부상당함.

 “저는 술병을 손에 쥐고, 삶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왜 그곳에 있었나요?

 Ninef Radjah는 Marseille 남동쪽 항구 도시 Toulon에서 친구들과 함께 오후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AFP 인터뷰에서 자신은 노란 조끼가 아니며, 시위에 참여하지도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오후 6시경, 그는 시위로 인해 교통이 차단된 도심 대로인 Republique가에 있었습니다. “술병을 손에 쥐고, 삶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시위가 끝났고,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몇몇의 노란 조끼가 거리에 있었습니다. Ninef는 “경찰의 존재에 대해 우려를 느끼지도 않았습니다.”라고 그의 변호사가 설명했다. “아무 이유 없이, 경찰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라고 Ninef는 변호사 Didier Caporossi에게 진술했다. 그가 피격을 당할 때, “그는 잠시 망설였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라고 Didier Caporossi가 말했다. “저는 검은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술병을 떨어뜨렸고, 도망쳤습니다. 저는 무엇인가 제 머리를 타격하는 것을 느꼈습니다.”라고 Ninef가 말했다.

지금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요즘, 제게 삶이란 “우울증에 빠지지 않기 위한” 전쟁입니다. “그는 두통을 앓고 있으며 하루에 17시간씩 잠을 잡니다.”라고 Ninef의 변호사와 증인 Cynthia Cazorla가 말한다.

 인터뷰어 Estelle Emonet에 따르면, Ninef Radjah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경찰 징계 기관은 조사를 진행 중이다. 남동부 프랑스 Seyne-sur-Mer에서 온 Ninef Radjah는 2019년 1월 12일 남부 프랑스 항구도시 Toulon 노란 조끼 시위 도중, 왼쪽 눈을 실명했다. AFP는 그가 부상을 당했던 Mayol 경기장 앞에서, 2019년 2월 7일 Ninef Radjah와 그의 변호사 Didier Caporossi를 인터뷰했다. 그는 자신이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그저 지나가고 있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 원문 출처 :
https://factcheck.afp.com/life-after-losing-eye-french-protests

* 참고 자료 1 : 
[Part 1/3] 2019년 4월 18일자 AFP의 부상자 인터뷰 번역
https://emmanuelmacrondemission.tistory.com/199

* 참고 자료 2 : 이 링크에 가면 경찰 폭력에 의한 부상자에 대한 상황 설명과 사진, 관련 뉴스 기사(해당 사진이나 링크 클릭) 등을 볼 수 있음. 아카이빙 게시물이기 때문에 운동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부상자 상황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음.

https://desarmons.net/index.php/2019/01/04/recensement-provisoire-des-blesses-graves-des-manifestations-du-mois-de-decembre-2018/

http://lemurjaune.fr/

* 참고 자료 3 :

6월 21일 현재, 경찰 폭력에 의한 희생자 현황 통계
https://emmanuelmacrondemission.tistory.com/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