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계급운동으로 발돋움할 잠재력 지닌 노란조끼 시위
노동운동의 ‘사회적 대화’가 잘못된 이유...
노란조끼, 노조에 총파업 제안
정은희(민중언론 참세상)┃서울
“처음 노란조끼 사진을 봤을 때 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았습니다. 언론이나 공공장소에선 거의 볼 수 없는 몸들이 있었습니다. 고통스런 육체. 피곤과 노동에, 굶주림에, 지배자에게 매일 업신여겨지고, 공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배제된 이들을 말입니다. 쇠약해진 얼굴들, 구부정하고, 부서진 사람들, 피곤에 지친 손들을 보았습니다.”
- 프랑스 작가 에두아르 루이스
‘부자들의 대통령’에 맞선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가 새해에도 계속되고 있다. 마크롱 정부의 강경 대응과 양보 모두 이들을 저지하지 못했다. 마크롱은 지난 대선, 자신은 좌도 우도 아니라며 기성정치에 거리를 두고 집권에 성공했다. 그런데 이런 그에 반대해 일어난 노란조끼도 전통적으로 거리 시위를 조직해온 야당과 노동조합, 사회운동 외곽에서 등장했다. 하지만 마크롱이 집권 뒤 바로 우익 정치꾼으로 판명 난 것처럼 노란조끼도 이제 자신의 정치경제적 기반, 즉 노동자계급의 성격을 점점 더 분명히 하고 있다.
노란조끼의 요구는 최저임금 및 연금 인상, 전력 부문 국유화, 긴축 제한 등 전통적으로 노조와 좌파가 주장해온 의제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시위 초 노란조끼 참가자 160명을 인터뷰한 한 연구에 따르면, 참가자는 실업자이거나 은퇴자(25.5%), 서비스업노동자(33.3%), 제조업노동자(14.4%), 간호사, 교사 등 전문직노동자(5.2%)가 다수였다. 또 응답자의 40%는 최소 1번 이상 파업에 참가한 경험이 있었다. 즉, 그들은 이자나 임대소득이 아니라 임금과 사회보장으로 사는 노동자계급인 것이다. 그러면 왜 노란조끼 시위에 나선 노동자들은 노조조끼가 아니라 노란조끼를 입었을까?
△ 지난 1월 5일 파리의 생 제르망 가에서 노란조끼 시위대가 도로를 봉쇄하고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프랑스의 노조운동의 위기
사실 프랑스에서 노란조끼와 같이 전통적인 시위 구조 외곽에서 정치적 위기가 야기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5년 10월 빈민가 방리유 폭동, 2015년 11월 파리 테러나 2016년 봄 밤샘시위가 그렇다. 특히 방리유 폭동이나 파리 테러는 이민자 2세대가 일으킨 것으로 이들에 대한 프랑스 정치의 실패를 적나라하게 말해줬다. 그리고 이제 더 많은 기층 민중이 방리유에서 이민자 2세대가 벌였던 폭동을 동반한 방식으로 집권층에 저항하고 있다. 그러나 노란조끼가 가리키는 문제는 프랑스 기성정치의 실패만이 아니다. 이미 알려진 노조*의 위기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프랑스 노조의 위기는 1980년대 모순적이게도 사민주의 미테랑 정부 시절 자본과 정권이 합작한 신자유주의 산업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와 함께 시작됐다. 당시 광산과 제조업이 문을 닫거나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경제의 중심은 금융과 서비스로 뒤바뀌었다. 동시에 불안한 노동조건과 실업이 확대되면서 노조는 지역과 핵심 동력의 주요 기반을 잃어버렸다. 정부는 이와 함께 임금결정 구조를 탈중앙화하며 노동조합 위기를 가중시켰다. 산별 중심의 단체협상은 기업별로 전환됐으며, 단체교섭에서의 노조 대표성을 약화하면서 노조는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방어하는 권한을 잃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과 정부의 공격 속에서 주요 노총들은 방어 외에 공세적인 투쟁을 조직해오지 못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인 사회적 대화와 유연안정성을 받아들이며 비정규직 증대에 기여했다.
이러한 프랑스 노조운동 쇠퇴 현상을 가장 분명히 보여주는 것은 낮은 조직률이다. 현재 프랑스 모든 노조는 2,350만 임금노동자 중 모두 240만 명을 조합원으로 조직(7.7%)하고 있는데 이는 OECD 가입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특히 비정규직과 여성, 이주 노동자를 비롯해 민간 서비스 분야의 조직률이 낮다. 이러한 프랑스 노조 현황은 민간 부문의 노동조건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단체협상은 주로 공공부문에 집중되는 한편, 민간부문은 훨씬 더 불안한 저임금 일자리가 많다. 이 때문에 노조들은 민간 부문을 잘 모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 노란조끼 다수는 이러한 미조직 부문의 노동자들로 이뤄졌다.
△ 9주 연속 주말 대규모 집회가 프랑스 곳곳에서 열린 가운데, 지난 1월 5일 프랑스 북부 릴에서도 노란조끼 시위대가 '마크롱 퇴진', '더 많은 민주주의' 등을 외치며 경찰과 대치했다.
노란조끼와 노조의 관계와 향방
프랑스 노총들은 노란조끼 운동이 시작된 지 약 1달 반 만에야 테이블을 만들었다. 12월 6일 이 자리에서 좌파노총 CGT를 비롯해 6개 노총(CFDT, FO, CFE-CGC, Unsa, FSU)은 노란조끼의 메시지와 유사하게 정부가 “전력과 임금, 교통과 주거 그리고 공공서비스의 위상과 접근 가능성 및 조세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을 내놔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여전히 노란조끼에 거리를 두면서 종전대로 투쟁보다는 대화를 고수했다. 이 회의에 동석했지만 서명은 거부한 연대노조는 이 선언이 ‘상명하달’이자 “시위대가 수년 동안 겪은 폭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애초 좌파 CGT마저 처음부터 폭력과 극우 참가를 이유로 노란조끼 시위에 거리를 뒀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노조가 조직한 각각의 시위나 파업도 노란조끼와의 거리를 좁히지 못했고 지난 달 14일 CGT 등 노총이 제안한 총파업도 노란조끼와는 대조적으로 흐지부지 끝났다.
그럼에도 노조운동과 노란조끼 시위의 연대를 위해 분투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미 연대노조는 노란조끼 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으며 CGT 등 기층 조합원 중에도 노란조끼의 주요 참가자인 경우가 많다. 특히 툴레즈를 중심으로 노란조끼 운동이 노조에 총파업을 조직하자고 제안하기 시작하면서 향후 이 운동의 새로운 단계를 예고하고 있다.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노란조끼 참가자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항구와 고속도로 봉쇄도 이뤄졌지만 앞으로도 수많은 도로봉쇄 행동이 계획돼 있다. 에어버스나 슈퍼마켓 체인과 같은 대기업 봉쇄 행동도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이제 노란조끼는 노조가 자신의 역할을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반대로 전 국민과의 대화를 제안하고 노조들을 자신의 편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CGT와 연대노조는 이를 거부했지만 다른 노총들은 참가 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한편, 연대노조는 이미 노란조끼의 총파업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CGT는 아직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만약 노란조끼와 노조가 함께 한다면 마크롱 정부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운동의 중심이 돼 위력적인 새로운 저항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전망된다. 프랑스 노조운동이 어떻게 나설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 프랑스에는 프랑스노동총동맹(CGT), 민주노동총동맹(CFDT), 프랑스기독교노동자조합(CFTC), 프랑스관리직총동맹(CFE-CGC), 노동자힘(FO) 등 5대 대표 노총이 있다. 이 노총들은 크게 세속주의 좌파, 기독교 우파 진영으로 구분된다. CGT와 CFDT가 좌파, CFTC, CFE-CGC, FO가 우파에 속하며, 좌파 중 CGT는 프랑스 공산당과 CFDT는 사회당에 직접적인 관련은 없더라도 가깝다. 좌파 노조 중에는 더욱 급진적인 단일노조연합(FSU), 연대(Solidaires)가 있다. 이들은 노사합의주의에 비판적이며 원외 투쟁 전략을 추구해 왔다. 이외 경찰 노조가 가입해 있는 중도 자율노조연맹(UNSA) 등이 있다.
* 출처 : 사회변혁노동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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