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분노와 환멸은 엘리제궁을 향하고 있다
프랑스 기성정치를 향한 환멸의 화약고,
폭발하기 시작하다
정용경┃사회운동국장
△ 개선문에 시위대가 적어둔 문구들, '우리에게는 저항할 이유가 있다', '마크롱 사퇴'.
형광 조끼를 입은 수십만 명의 시위대가 경찰의 장갑차에 불을 지르고 최루액을 가르며 프랑스 전국의 주요 고속도로들을 점거했다. 300개 넘는 고등학교와 프랑스 전국 각지의 대학 학생회에서도 ‘노란 조끼gilets jaunes’들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연일 발표하고, 수백 개의 집회와 거리행진 및 학교점거를 이어가며, 30만 명이 넘게 참여한 전국 학생 총파업에 돌입했다. 거리의 모든 상점과 카페에는 노란 조끼들을 지지하는 의미에서든, 창문 유리를 깨지 말아달라는 당부에서든, 노란 조끼가 한 장씩 걸려 있었다. 구 시가지의 각종 문화재에는 다음의 문구들이 중구난방으로 칠해져 있었다. ‘우리는 훨씬 사소한 일들로 (왕의) 목을 잘랐다’, ‘마크롱 이 놈은 좀도둑놈이다’, ‘노동이 왜 사치여야 하는가’, ‘좌파나 우파나 세금덩어리다’, ‘강한 민중의 저항은 혁명으로 이어진다’...
이 시위가 촉발하게 된 배경을 무 자르듯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계기, 경과, 규모, 그리고 현재까지 쟁취해 낸 성과만큼은 어느 정도 분명하다. 2018년 10월 21일 이후 경찰 추산으로 하루 최대 287,710명의 시위대가 거리로 나섰다. 12월 13일 현재까지 지속 중인 이 시위로 파리 교외에서는 4명의 민간인이 사망했고, 200명의 경찰관과 1,000명 넘는 민간인이 부상당했다. 12월 8일 하루에만 2,300명이 넘게 체포되었다.
12월 11일, 마크롱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시위대의 대표적인 요구사항으로 파악되었던 것 중 일부를 전격 수용하겠다며 종전의 강경한 입장에서 한층 수그러든 모습을 보였다. 12월 2일에만 해도 유류세 인상 철회는 없을 것이라고 단호히 못박아 말하던 마크롱 정부가 180도 돌변한 것이다. 대국민 담화에서 마크롱은 내년부터 최저임금을 월 100유로 인상하는 방안, 내년으로 예정되었던 연금 소득세인 사회보장기여금의 인상 취소, 초과근무수당 과세 중단, 유류세 인상 계획 철회 등 시위대의 요구를 일부 수용한 내용을 발표했다.
그러나 노란 조끼 시위대는 이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여론이 대부분이라는 분석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핵심 요구사항 중 하나로 부상했던 ‘부유세 환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더러, 엘리제궁의 순금으로 된 책상에서 촬영된 마크롱의 담화 연설 자체가 이미 ‘지배계급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그 어떤 패러디보다도 얄밉게 표출했다는 점에 대해 ‘우리의 요구를 수용하는 자리에서조차 우리를 무시했다’라는 대중적 분노가 들썩이는 실정이다.
그 수위를 정확히 예측할 길은 없어도, 시위는 아마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이 ‘노란 조끼’ 시위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이렇게 발발할 줄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지만, 어찌 보면 정말로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노란 조끼’ 시위대의 정체는? 시위의 전개는? 그들의 요구사항은?
애초 유류세 인하를 요구하던 이들의 요구사항은 실로 다양했고 정치성향도 극우적인 FN Front National의 마린 르펜 지지자, 좌파적인 FI La France Insoumise의 멜랑숑 지지자, 무정부주의자를 총망라했다. 일각에서는, 끔찍한 가난 속에서 성장한 본인의 삶의 체험을 걸쭉한 욕설로 풀어내며 프랑스 대선에 출마했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던 코미디언 콜루쉬Coluche가 ‘노란 조끼들의 유일한 대변인’이라는 주장들도 나타났다.
이들의 어느 정도 공통된 요구사항은 ‘유류세 인상을 철회할 것’, ‘마크롱이 물러날 것’, ‘긴축 철회’, ‘노동자계급과 중산층에 대한 정부 차원의 투명성’, ‘부유세 부활’, ‘신자유주의 반대’,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수렴될 수 있겠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들은 단일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상황의 전개에 대해서는 확실한 사실관계가 다음과 같이 파악된 바 있다.
한 달 만에 마크롱 정부를 백기투항하게 한 이 시위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의외의 장소에서 잠잠히 있다가 갑작스레 튀어나온 SNS상의 게시글이었다. 2018년 5월 29일, 프리실라 루도스키라는 한 운전수가, 자동차 기름값 중 유류세의 비율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높은지를 설명하는 영상을 올리고 유류세 인하를 위한 온라인 서명을 시작했다. 잠잠히, 그러나 꾸준히 서명이 늘어가던 그 링크를, 같은 센느에마른 지역 출신 운전수인 에릭 드루에와 브루노 르페브르라가 페이스북에 공유하면서, ‘2018년 11월 17일, 유류세 인상을 막아내는 전국행동을 벌이자’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SNS상으로 이 게시물이 갑자기 불붙듯이 번져나갔고, 원 게시글에 100만 개 이상의 서명이 모였다. 인터넷으로 불만만 내비치던 사람들이 거리로 나서게 된 것은 2018년 11월 9일이었다. 솜므 지방에서 노란 조끼를 입은 시위대가 ‘1918 협정 기념식’에 참석한 마크롱을 직접 대면하려고 접근했다가 저지당했다. 며칠 뒤인 11월 15일 이들은 상징적으로 류례 지역의 도로를 점거했다. 2018년 11월 14일 모르베크 지역의 시장이 시청 앞에 거대한 노란 조끼 현판을 걸며 이 시위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4주간 파리 시내를 불붙인 본격 시위는 63세의 샹탈 마졔가 차에 치여 사망하며 촉발되었다. 이날 정오께 샹젤리제와 엘리제궁 등 파리 시내에 대한 차량도로 점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어진 한 달 간 시위대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고 프랑스 전역이 마비되었으며, ‘내전 직전의 상황’에서 정부는 시위 진압에 최루액, 물대포, 장갑차까지 동원했다.
△ ‘사기치지 마라! 학생자치 보장하라! 우리의 투쟁은 하나다!’ 12월 7일 리옹 지역에서 거리로 나온 고등학생 총파업, 노란조끼 시위에 연대하는 모습.
증세 부담 떠넘기려던 마크롱 정부에 대항한 ‘분노의 연대’
멜랑숑은 ‘시위는 이어질 것’이라며, 마크롱 정부가 민중의 분노를 직시하길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의 6대 노동조합은, 덮어두고 ‘폭력에 반대한다’라는 입장으로 일관하며 몸을 사리는 눈치이다. 그만큼 혼란스러운 상황이기도 하다. 파리 일부 지역에서는 경찰노조에서도 공식적으로 ‘노란 조끼들을 지지한다. 참을 만큼 참았다’라는 입장문을 내며 진압을 거부하고 시위대에 결합하기도 했지만, 국가폭력에 저항하려 노란 조끼 시위에 가담했다는 안티파 무정부주의자 그룹은 오히려 “노동조합들마저 노란 조끼 시위를 폭력적이라고 비방한다. 우리를 욕하게 하려고 경찰노조가 지능형 안티로 시위대에 들어왔다. 상점 문을 부수고 약탈을 하는 건 다 경찰노조더라”고 말하고 있다.
무정부주의자와 경찰이 같은 시위대 안에서 진을 치고 대통령궁을 향한 길목에 불을 질렀다. 이 시위에 대해 진행된 12개의 대규모 범국민 여론조사에서, 적게는 66%에서 많게는 84%의 응답자가 ‘노란조끼 시위를 지지한다’, ‘시위가 이어지길 바란다’, ‘시위대는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분노를 표현해 주었으면 한다’, ‘시위대는 모두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등의 항목에 ‘예’라고 응답했다. 이처럼 대중의 분노와 환멸은 엘리제궁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 전면적으로 나서서 ‘우리는 당신들의 체제 유지 마루타가 아니다’라고 선언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프랑스의 고등학생들이다. 대학입시제도 개악을 거부하고 노란조끼 시위를 지지하며 그 분노에 연대하기 위해, 오늘도 전국고등학생연맹은 학생총파업을 전개 중이다.
* 기사 출처 : 사회변혁노동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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